세금보고서가 밀려있어도 IRS 압류를 풀 수 있다

미연방국세청 (IRS)에서 은행계좌나 임금에 압류를 가하는 목적은 한 가지이다. 납세자의 생활에 직접적인 불편을 줌으로써 밀린 세금에 대한 납세자의 즉각적인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수없이 날아오는 IRS 편지에 눈도 깜박하지 않거나 배우자 몰래 뜯어보고 버려오던 납세자들이, 월급과 은행계좌 압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된다. 은행에서 자동결제되어 나갈 렌트비며 모기지, 유틸리티 뿐만 아니라 직원 월급으로 나간 수표도 부도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고 싶은 납세자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산이 버티고 있다. 이쯤 되면 IRS에서 원하는 것을 주지않은 상태일 확률이 높다. 그것이 433-A나 433-B 등의 IRS 회계양식일 수도 있고, 예납세금 (estimated tax)이거나 밀린 세금보고서일 수도 있다. 보통 IRS에 압류를 풀어달라는 전화를 하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 전에 밀린 세금보고서부터 제출하라는 요구를 한다. 먼저 세법준수 (compliance)부터 시켜야 세금액도 책정되고 그에 따른 해결 방안이 나오므로 당연한 논리적, 순차적 단계이다. 그러나 밀린 세금보고서를 하루 이틀만에 꾸밀 수도 없고 지금 당장 압류를 풀지 않으면 도저히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어떻게 할까? 청구서가 밀리고 저녁밥상 찬거리를 살 수 없는 경제적인 타격이 있음에도, IRS는 끄덕없이 세금보고서 파일링 전에는 압류를 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시나리오에 딱 맞는 연방세금법원의 판례가 있다. Vinatieri v. Commissioner, 133 T. C. 892 (2009) 라는 케이스의 판결문을 보면 납세자가 IRS 압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의 심각성 (economic hardship) 을 증명할 경우 설사 세금보고서가 밀려있더라도 압류를 우선 풀어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사건에 나오는 납세자 Kathleen Vinatieri 씨는 IRS에서 마지막 압류경고장 (Final Notice of Intent to Levy)을 받은 후 경제적인 타격을 이유로 압류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항소 신청을 했다. Vinatieri씨는 항소 심사에서 자신의 회계자료를 바탕으로 압류가 야기한 경제사정을 증명했다.

심사직원도 이에 동의했고 결국 그녀의 케이스를 징수불가상태로 선언하기로 결정했으나 임금 압류를 풀어주지는 않았다. 세금보고서가 밀려있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지치지 않고 연방세금법원에 리뷰를 청원했고 판사는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런 판례를 가능케한 세법은 Internal Revenue Code 6343(1)이다. 은행계좌나 임금 압류가 납세자의 심각한 경제적인 타격을 야기하였고 경제적 타격을 문서로 증명하여 징수불가상태 결정을 받은 이상 IRS가 압류를 풀었어야 하며 IRS가 밀린 세금보고서의 파일링을 조건부로 내걸 수 있다는 조항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판결문을 읽고 세법과 이런 판결문을 쓴 판사를 더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치에도 맞고 간단명쾌하다.


이러한 2009년 판례 후 IRS내부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먼저 Taxpayer Advocate Service에서 이 판례를 따라 납세자들을 돕겠다고 선언했으며, 그 다음은 IRS Office of Chief Counsel에서 내부집행가이드를 발행했다. 항소심사시 납세자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충분히 증명하였다면 밀린 세금보고서가 있더라도 Vinatieri 케이스를 따라 압류를 풀어야 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항소심사직원이 이 케이스와 내부가이드를 숙지하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매우 낮다고 보면 된다. 일부러 모른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모르거나, 알고 있었더라도 타성에 젖어 해오던 대로의 안전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을 확률이 더 크다. 십년 정도 된 판례는 이쪽 업계에서는 새로운 판례에 속한다. IRS처럼 덩치 큰 조직 내에서 인식과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몇 십년 근무로 잔뼈가 굵은 직원에게 최근 새로운 판례를 들먹이는 것도 어렵고, 이들에게 한 두번의 내부 교육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납세자들과 대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세법에 따른 책임과 권리를 제대로 알고, 정말 긴급할 때는 흡사 매끄러운 외교관과도 같이 해당 직원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꼭맞는 판례를 적절한 타이밍에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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