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체질 이야기(1) : 병의 원인을 고치지 않아야 병이 낫는다

당신이 처음 이 병에 걸리게 된 것은 당신 탓이 아닐 수 있지만, 아직도 이 병이 당신의 몸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분명하게 당신의 책임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병이 생긴 원인에 온 정신과 노력을 집중하고, 그 원인을 고치려 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당신의 병이 낫질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이 병을 고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병의 원인에 대한 치료가 아닌, 이 병이 계속해서 당신 몸에 머무르게 하는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당신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한의원을 처음 찾는, 혹은 중국식 한의학이나 동의보감식 한의학에는 익숙하지만 한국의 사상체질에는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환자분들에게 ‘사상체질의학’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본인은 첫 상담의 도입부에 위의 이야기를 자주 사용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처음에는 잠시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을 해보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는 얼핏 들으면 현학적이고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는 저 말이, 오랫동안 투병을 했던 이들이면 누구나 금방 깨닫고 수긍할 수 있는 진실을 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기 때문이다.

 

세상에 누가 아프고 싶어서 아프기 시작할까
이는 한의원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지금 그들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들에 대해 설명해 주면, 대부분 설마 그것이 이렇게까지 나쁠 줄을 몰랐다 거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것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는 식으로 자신을 어필하려 하는 것 과도 무관하지 않다. 세상에 다치고 싶은 마음으로 일부러 위험한 운동만 찾아서 하는 이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 확실한 관계임을 알면서도, 굳이 스트레스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싫은 사람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사람은 있을까?

 

질병이 계속해서 내 몸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질병이 시작된 원인과는 무관하다
이처럼 질병의 처음은 그 원인이 내부의 불균형에서 시작하였든,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에서 시작하였든 거의 대부분의 경우 ‘본인이 의지’나 ‘의식’과는 상관없이 시작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본인이 원치 않게 시작된 질병이라 해도, 처음 발병 후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나도 그 괴로운 증상들이 사라지질 않고 내 몸 안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면, 그 병은 이미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던 ‘사고의 영역’을 떠나 본인이 해야만 했던 일을 하지 않은 ‘무책임의 결과’라는 영역에 속한다.
예를 들어 장거리 운전을 하고 나서 시작된 통증이 만약 몇 주 이상 지속된다면, 그 시점에서 허리 통증이 지속되는 원인은 이미 ‘장거리 운전’이 아니라 장거리 운전 이전부터,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좋지 않았던 ‘옆으로 누워 잠자는 자세’나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 자세’에서 찾는 것이 더 논리적인 추론이 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아플 때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낫지 않을 때 병원을 찾는다
우리는 보통 ‘처음 아프기 시작할 때’ 병원을 찾기 보다는 ‘일정 시간이 지나도 아픔이 낫질 않고 계속해서 지속될 때’ 병원을 찾기 시작하는데, 이는 병원에서 치료에 집중해야 할 부분이 ‘병을 일으킨 원인’보다는 ‘병이 지속되는 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의 원인을 고쳐 병을 고치는 현대의학
누군가 무거운 것을 들다가 허리를 다쳤다면, 일반적으로 현대의학은 충격이 가해진 허리를 보호하고, 허리에 가해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를 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충격이 어디까지 가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구분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의학, 특히 한국의 사상의학에서는 이런 ‘병’ 그 자체와 관련된 진단의 중요성이 크게 줄어든다. 이는, 이미 허리의 근육이 망가져 버린 시점에서 치료의 주체는 이미 ‘몸의 회복력’으로 넘어간다고 보고, 회복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치료의 중점이 된다고 보는 사상의학만의 독특한 관점에 기인한다.

 

병의 원인을 고치지 않고 병을 고치는 사상의학
그러니 사상 체질 의학에서는, 허리에 부상을 당한 환자가 왔을 때 허리를 고치기 보다는 그 사람이 부상 이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불균형 (체질적 불균형)을 개선하고, 이 체질적 불균형을 악화시키던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치료를 통해 몸의 회복력을 극대화 해 허리의 통증을 개선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법은 현대의학이나 중의학 대비, 오랫동안 낫질 않고 고생하던 만성병들에 특히 좋은 치료 효율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