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파산인가?

Q :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있습니다. 세탁소를 여러 개 하는데, 몇 년 전부터 저한테 돈을 빌렸습니다. 세탁소 하나를 팔아 돈을 갚겠다고 했는데, 벌써 여러 해가 지났네요. 처음엔 돈을 잘 갚더니, 작년부턴 원금은 커녕 이자도 안 주고, 전화도 잘 안 받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이 친구가 어려워 그러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갚겠지하고 기다렸는데, 며칠 전에 파산법원에서 통지서가 날라왔습니다. 이 친구가 파산을 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자기는 더 이상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며, 이젠 파산했으니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자기 변호사하고 이야기하라면서 말이지요. 친구 사이에 이래도 되는 건가요? 저도 어렵게 돈벌어, 가지고 있던 쌈짓돈을 모두 빌려줬는데, 너무 황당하네요. 돈을 돌려받을 길은 없나요? 갑자기 파산했다고, 연락하지 말라고 하니 너무 허무하네요.

A : 마음이 얼마나 황망하시겠습니까. 쌈짓돈을 모두 빌려줬다면, 작지 않은 돈일 것 같은데. 하긴 액수가 중요하다기보단 모든 쌈짓돈을 잃었다는 상실감, 친구에게 느끼는 배신감, 파산법에 대한 원망, 이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였겠지요. 급기야는 화가 치밀기도 하겠지요. 특히 친구라서 믿고 빌려줬는데 말이지요.
파산법을 다뤄보면 한인들과 주류 미국인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인들은 사채가 많습니다. 친지, 지인, 사채업자 등을 통해 돈을 빌리는 것이지요. 미국인은 사채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빚은 은행이나 카드 회사에 지고 사채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한인들은 사채가 몇 십만불씩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미국에서 신용기록이 없거나, 신용점수가 모자라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급전이나 그 외 흔적을 남기면 안 되는 경우 사채를 쓰곤 하지요. 사업체 매매에 현금 다발을 쓰레기 봉지에 넣어 몇 십만 불씩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고요.

여하튼, 미국정부 입장에서 유쾌한 상황은 아닙니다. 현금이 많이 오가면 소위 지하경제가 커질 수 있으니까요. 질문하신 분은 받은 이자를 모두 세금 보고하셨나요? 대부분의 한인은 이런 경우 수입으로 보고하진 않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불로소득인 것이지요. 파산법은 지하경제로 돈이 흘러가는 것은 방지하는 장치 중 하나입니다. 돈을 빌리려면 은행에서 빌리라는 것이지요. 돈이 있는 사람은 은행에 돈을 넣고, 수익이 생기면 세금보고 하라는 것이지요. 상당히 합리적인, 미국적인 발상인 것이지요. 다만, 한인들이 처한 현실하곤 동떨어진 상황이라 우리는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한인들도 미국법을 따르는 것이 맞습니다. 미국에선 가까운 사이라도 돈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굳이 친구를 도와주겠다면, 친구가 융자를 얻을 때 보증을 서 주면 되겠지요. 어떠신가요? 이자 안 받고 보증 서줄 만큼 절친한 사이신가요?

[문의] TEL: 703-333-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