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일이다.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나에게 어느 외국인이 다가와 일본어로 인사를 하였다. 나는 정색을 하며 그에게 “나는 일본인이 아닌 한국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가 “미안합니다. 일본 사람인 줄 알았어요.”라며 머쓱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나는 누가 뭐라건 나 자신이 한국 사람임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였다. 아름다운 나의 나라 대한민국, 정 많고 사랑이 넘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누구에게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워졌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모두 다 감옥으로 가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정치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피 터지도록 싸움만 하는 정치인들의 꼬락서니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어느 외국인이 “한국의 대통령은 왜 임기가 끝나면 다 감옥으로 가나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이라고 대답해 주어야 할지 고민했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회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왜 감옥에 갔을까? 무엇 때문에 결국 감옥에 가야만 했을까? 생각하기도 싫고 대답하기도 싫다.

어디 그뿐이랴! 현직 대통령을 타도하자며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겠다는 어느 단체가 낸 기사를 보고 나오는 건 한숨을 넘어 화가 난다. 이제 나이 들어 백 세를 바라보는 노인들이 자신의 조국의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그것도 백악관 앞에서 시위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똑바로 설 수 있을 것인가가 걱정일 뿐이다. 어느 단체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아우성치며 싸움질하다 결국 법정까지 가는 기막힌 현실을 접해야 하는 것도 부끄러움이다. 그렇다고 뭐 특별하게 하는 일도 없이 명함 한 장 내미는 그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어쩌다 대단한 일도 아니건만 헬리콥터가 뜨고 경찰이 들이 닥치는 상황을 그들은 기어이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알고 보면 너나 나나 다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 특별한 사람도 아니건만, 언제부터 나라 사랑에 큰 노력을 했으며 언제부터 우리 한인을 위해 열성적으로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가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앉으면 정치 이야기에 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핏대를 올린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체 하나 만들어 회장이랍시고 목에 목 댕기 하나 꽉 조이고 식당마다 앉아 다른 단체 흉보기 급급한 우리 한인들, 우리는 남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그런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국에 살면서 한인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약속한 그 순간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봉사는 다 어디로 가고 봉사가 아닌 정치에 관심을 두는지 아무리 작은 내 뇌를 굴려봐도 결국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몹시 나쁜 뇌는 아니라고 자부했는데 대답 하나 찾아내지 못한 것을 보니 이제 내 뇌도 서서히 쇠퇴하는가 보다. 그래도 괜찮다. 갈 때 되면 마음도 몸도 뇌 기능도 다 사라질 것이기에 걱정은 없다. 아예 눈 감고 귀 닫고 살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빨리 정상을 되찾고 정겹고 아름다운 나의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필리핀 여인이 “우리 딸이 빅뱅을 너무 좋아해요. 매일 빅뱅의 노래만 듣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뻤다.

그러나 “한국 정치인들은 왜 맨날 싸움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그것은 해명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부끄럽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누가 나를 이렇게 부끄럽게 만든 것일까? 누가 나를 이렇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조국의 정치인들이었다. 국민을 위해 일을 할 수 없다면 더는 정치인이 될 수 없고 한인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면 더는 한인을 위한 단체의 단체장이 될 수 없다. 너와 내가 모여 사랑을 만들고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냥 방구석에 앉아 빈대떡이나 부쳐 먹는 게 훨씬 더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닐까 한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노인들이여! 백악관 앞에서 시위할 건강이 허락한다면 거동이 불편한 이웃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탄핵할 목소리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들에게 노래 한 곡조 불러주라고!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www.ykcs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