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성공의 명제

아들이 인격형성의 중요한 시기가 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아버지로서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아빠는 네가 ,,,,,, 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잠시 주저하게 되었다. 나는 아들에게 과연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일까? 아니, 나 스스로에게 어떤 삶을 추구하는 것인가? 성공한 삶? 행복한 삶? 참으로 쉬우면서도 어려운 선택이다. 현실은 성공한 삶을 종용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성공한 삶은 이미 대중이 그 성공의 작대를 만들어서 성공의 정도를 측정하기 쉽게 해주었다. 타고 다니는 차가 고급차인지, 거주하는 주택이 부촌에 위치해 있는지, 학벌은 어느정도 되는지, 손목에 차고 다니는 시계, 들고 다니는 핸드백, 등등…

 

 

예전에 최인호 작가가 작고했을때 참으로 슬펐던 기억이 있다. 그는 내가 진정 존경하고 좋아했던 작가였다. 대학시절의 그의 글들은 나에게 많은 감흥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가슴 울린 글은 그가 타계하기 전에 발표한 ‘김유정 생가’에서 였다. 그의 글에는 그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은 50년전이라고 했다. 가난했지만 가난이 릴케의 장미꽃처럼 아름다웠던 그 시절이라고 했다. 최 작가에게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50년 전인 것이다.

 

 

수학의 명제처럼 행복과 성공에는 수학적 공식이 숨어있다. “행복한 삶은 성공한 삶이지만, 성공한 삶은 항상 행복한 삶은 아니다.” 즉,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 반드시 성공한 삶이 된다. 평생을 봉사로 보낸 마더 데레사는 가난했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성공하지 않은 삶이라고 할수 없을 것이다. 평등과 평화를 위해서 살고 있는 넬슨 멘델라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성공했다기 보다는 흑백의 인종을 화합시키는 성과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행복을 목적으로 길을 떠나면 반드시 성공을 만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절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대로, 성공을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 결국 파멸로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본다. 한때는 한 국가의 정상까지 올라갔던 사람도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주택매매의 경우 두가지 방향으로 손님들이 접근한다. 성공적인 거래를 위해서, 행복한 거래를 위해서. 성공적인 거래는 거의 가장 싸게 사고, 가장 비싸게 팔고, 수수료는 가장 적게 지불하고, 모든 비용은 가장 저렴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이 매매되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의 뜻대로 일이 안 풀리면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고 미워하기까지 한다. 내가 장담하건데, 그 손님의 죽기전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에는 주택매매기간은 절대 아닐 것이다.
반대로 행복한 거래로 방향을 정한 사람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둔다. 즉, 어떤 결과도 나의 행복, 즐거움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철학이다. 이 손님은 다시 돌아가고 시간이 너무 많아서 어느때로 돌아갈지를 고민할 것이다.

 

 

“아들아, 아빠는 네는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