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트레킹의 백미. 토레스 델 파이네 (2)

4일간의 식량과 장비 그리고 부수적인 준비물로 가득 찬 배낭들을 메고 12명이 띠를 만들어 오르는 길. 원색으로 튀는 동행들의 패션감이 파타고니아의 한 능선을 화려한 꽃으로 피게 합니다. 평소 같으면 50분이면 족하다는 길이 간단없이 이어지는 비탈길이라 그 배낭의 하중으로 묵직한 걸음걸음이 느리기만 하고 온 몸을 적시는 땀의 무게가 더해지니 한 고개 넘을 때 마다 쉬고 하다보니 산장까지 한시간 반이나 걸려서 도착했습니다.

 

6개월 전에 산장 신청을 했었는데도 룸이 없어 텐트친 사이트와 밥 세끼 제공받는 조건으로 예약을 해서 오늘은 고스란히 야생의 자연을 덮고 자야만 합니다. 실비가 뿌리는 산허리에서 우선 2명씩 텐트 자리를 배정받고 잠자리를 구축한 뒤 짐들을 정리하고 방수를 한번 더 확인합니다. 이곳에서 공원내 상징적인 명소 파이네를 보러 갔다 와야하는데 비가 내리는 오늘 같은 일기에는 아무것도 볼 것도 얻을 것도 없으니 단연코 내일로 미룰 수 밖에…
예측할 수 없는 파타고니아의 날씨를 경험했다면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일이기에 이런 연유로 이번에는 한번 더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일정을 짜 두었기에 하루의 여유가 더 생기게 된 것입니다. 대신 다음날의 트레킹이 무척 힘들어지겠지만 파이네의 비경을 놓칠 수는 없는지라 내일 일출을 보러 올라가기로 하고 오늘은 무한한 휴식을 즐깁니다.

 

모두 식당 겸 휴게소로 집결하였습니다. 아무리 무거워도 지고 다녀야 하는 우리 한국민의 술. 소주. 그리고 한국식 안주와 반찬들도 챙겨서 말입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기다리다가 저녁도 먹어야 하니 자리도 미리 잡을 겸해서 장작 난로의 온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에 모여 앉았습니다. 시중 가격 3~4배를 호가하는 와인과 맥주를 시켜 취향대로 마시는데, 한국에서 공수해온 소주를 보탠 이런 산중에서는 소맥이 제격입니다. 거기에 가장 속궁합이 맞는 안주 마른 멸치에 고추장 찍어 먹기. 술잔을 권하는 저녁 무렵은 남도 삼백리처럼 얼큰하게 익어갑니다. 농무 짙은 계곡 산장 칠레노에서 보일듯 말듯 신기루 처럼 아른거리는 파이네 봉을 목전에 두고 나누는 주연. 그럴 무렵 옆좌석에 어깨에 태극기를 붙인 젊은이들이 국적도 모를 허접한 컵라면으로 시장기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안스러워 등산컵으로 소주 한대포를 주고 밑반찬에 안주까지 건네주니 고맙고 반가워 어쩔줄 모릅니다. 이내 따라 붙은 여학생들 하며 6명으로 불어나니 숫제 500ml 소주 한병을 아예 다 줘버립니다. 와인 한병을 더 추가로 시켜서 말입니다. 다들 우리 아들같고 딸 같은 나이에 비록 그들이 금수저든 흑수저 출신이든 이국 땅에서 만난 경험 적은 어린 아이들인데 싶어 어른으로서 선배로서 정을 전합니다. 이렇게 낯선 이방에서 만나는 동포들이 반갑고 정을 나누고 싶은 것은 모든 우리 백의의 한민족들이 품는 인지상정이겠지요.

 

내일 얼마나 고된 산행이 될진 모르지만 오늘은 오늘데로 충실히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니 만큼 마음껏 이 순간을 향유합니다. 파이네는 여전히 구름에 가려 무심하게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고 산그늘 짙게 내려 더욱 수다스러워진 숙박객들의 소음 속에서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듯 한 산장의 풍경이 또 다른 시간 속에 베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