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 매

갑갑작스런 행동 및 인격의 변화를 증상으로 간병인과 함께 필자를 찾아온 82세 남자환자의 이야기로 이번 주 칼럼을 시작하겠다. 간병인에 의하자면 이 환자 분은 어느 날 인가부터 갑자기 성격이 급해지며 신경질적으로 변하면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도 점차 환자를 멀리하기 시작하였으며, 환자 자신도 날마다 나가던 복지회관(daycare center)에 가는 일이라던가 사람들을 만나 사귀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에 점차 흥미를 잃게 되었다고 하였다. 간병인은 환자의 행동에도 변화가 와서 가끔은 매우 공격적이고 호전적으로 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이유 없이 자신도 밀치기도 하여 환자를 돌보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였다. 환자 스스로도 이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필자가 더 자세히 문진을 하였을 때 환자는 최근 또한 기억력이 심각히 떨어져서 최근에 일어난 일들이나 사실에 대해 잘 생각이 나지 않고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환자의 인지기능(cognitive function)에 문제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으며, 먼저 이 환자에 대해 선별 인지기능 검사를 시행하였다. 흔히 임상에서 신경과 의사는 퇴행성 뇌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선별 인지기능 검사들을 시행할 수 있다. 이 환자의 경우 갑작스런 행동 및 인격의 변화와 더불어 기억력 감퇴라는 증상 이외에도 다른 신체적인 증상을 동반하고 있었는데 인지기능의 장애 외에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들 또한 신경과 의사가 어떠한 선별검사를 선택하여 진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할 수 있다.

이 남성 환자의 경우에는 오래 전부터 걸음걸이에 불편함이 시작되어 보행장애 및 신체의 균형을 맞추는데 매우 문제가 있었으며, 더불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였다. 필자는 이에 따라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반영할 선별 인지기능 검사를 선택 시행하게 되었다. 먼저 시행한 선별 인지검사를 통해 환자는 인지기능 가운데 특히 시공간 지각력(visuospatial ability)에 가장 큰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공간 지각력의 장애는 환자에게 보행 및 균형 장애라는 신체적 문제를 초래한 듯 하였다.

더 나아가 환자의 경우 레이-오스테리에쓰 검사(Rey-Osterrieth complex figure test, ROCF)라는 정밀 검사를 받게 되었다. 이 검사는 흔히 쓰이는 신경심리검사(neuropsychological assessment) 중의 하나로 스위스 출신의 신경심리학자인 앙드레 레이(Andre Rey)가 1941년에 처음 창안한 검사로 후에 폴 알렉산드르 오스테리에쓰(Paul-Alexandre Osterrieth)가 규격화하여 시공간 지각력 및 기억력을 평가하는데 사용되는 매우 유용한 검사 중의 하나이다. 필자의 예상대로 검사상 환자는 시공간 지각력 및 기억력에 현저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러한 인지기능의 장애는 특정 형태의 치매성 뇌 질환을 강력히 시사하는 소견임을 의심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