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준 “최태호·모태구·차민호 붙는다면? 셋 다 집엔 못 돌아갈 듯“

분명 낯설진 않은데 왠지 낯설게 느껴졌던 배우 최태준이 MBC ‘미씽나인’을 통해 제대로 터졌다. 무인도에 떨어져 한 번 살인을 저지르더니 이를 덮기 위해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인명을 해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는 ‘살인마’가 되면서다.

유난히 큰 눈을 살인의 순간 더 크게 번뜩이며 보는 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간 덕분에 시청자들에 깊게 각인될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미씽나인’을 마친 최태준의 소회는 여느 때와 달랐다.

최근 성수동 카페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최태준은 “매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아쉽지만 이번엔 특히 더 아쉽다. 제주도에서 함께 생활하며 배우, 스탭들과 가족같이 지내다 보니 아쉬움이 큰 것 같다”고 떠올렸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비행기 사고로 출발한 ‘미씽나인’에 있어서, 그리고 ‘미씽나인’을 함께 한 배우들에게 제주도라는 공간은 더 없이 특별했다. 제주도 생활이 힘들지 않았느냐 묻자 그는 “힘든 시간도 지나고 나면 더 큰 추억으로 남지 않느냐”며 “당시엔 너무 춥고 배고프고 했지만 다 함께 있는 그 자체가 재미있었다. 촬영 시작부터 끝까지 다 같이 하고, 끝나고 나선 치킨 뜯으며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최태준이 열연한 극중 최태호는 밴드그룹 드리머즈 베이스 출신 배우로, 팀 탈퇴 후 승승장구 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성공과 이익 외에는 관심이 없는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인물이다. 조난 후엔 살인마로 돌변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은 물론, 그룹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였던 서준오(정경호)에게 깊은 증오심을 갖고 죄를 뒤집어씌운다.

단편적으로 보면 밑도 끝도 없는 평면적인 악인이지만 최태준은 태호의 내면을 살리는 데 몰두, 입체적인 인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캐릭터를 살린 건 ‘연기’가 다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최태준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살인을 많이 저지르는 인물이지만 살인을 할 때마다 다른 감정을 갖고 싶다는 배우로서의 욕심 있었다”며 “단순히 살인에서 희열 느끼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예를 들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살인을 계속 하면서 그 감정이 점점 무뎌지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씽나인’을 하면서 매 순간 스스로에게도 계속 질문을 던졌다. 조언도 많이 받았다. 나에게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고, 그런 난관에 부딪쳐서 겪으면서 해볼 수 있는 게 많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 한 인물의 짧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태호라는 인물의 큰 폭을 왔다갔다 해볼 수 있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그런 최태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태호는 왜 그랬을까.

“태호라는 인물을 보면, 전투력을 봐도 그렇고, 죽인 횟수나 불사조처럼 살아 돌아온 걸 봐도 그렇고(웃음) 강해보이지만 가장 약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매번 계획하고 ‘다 죽여야지’ 생각하고 죽인 게 아니라, 늘 ‘이 사람이 마지막이겠지’ ‘이 사람만 없어지면 나도 괜찮아지겠지’ ‘나도 평범한 삶을 살겠지’ 했던 거죠. 그런데 계속 감추다 보니 돌이킬 수 없는 게 된 거예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 죄가 정작 본인이 저지른 게 아니었던 거죠. 핸드폰을 찾기 전까지는 스스로 합리화하고,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치밀하게 완벽하게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해왔는데 그걸 알게된 뒤론 오히려 나약해지죠. 스스로 무너진 것 같아요. 본인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 때문에 왜 그렇게 살게 됐는지… 그러다 마지막회에서 준오형이 ‘너 그렇게 살면서 행복하냐’고 할 때 많이 무너진 거고요.”

‘미씽나인’에서 최태준이 살인마로 활약한 시점, 공교롭게도 타 방송사 인기 드라마에서도 희대의 살인마들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SBS ‘피고인’의 차민호(엄기준 분), OCN ‘보이스’의 모태구(김재욱 분) 등이 그 주인공이다. 세 살인마는 서로 밀고 끌며(?) 2017년 늦겨울 안방극장 ‘악인 트로이카’를 형성했다.

두 캐릭터와 비교했을 시 최태호만이 지닌 차별점에 대해 최태준은 “시청자들이 태호를 봤을 때 마냥 악역이고, 밉고, 쟤가 빨리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인물에 대해 궁금함이 있고 연민이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연기하면서도 마음 속 비밀을 갖고 연기했고, 안타깝게 비춰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사실 악인에게 그런 동정표가 가기란 쉽지 않은데, 그런 걸 받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태준은 또 “이런 악행은, 살인은 어떤 명분이나 이유를 붙여도 합리화 될 수 없고 정당화 될 수 없는 게 맞는데, 내가 자꾸 이런 감정 갖는 것들이 무의미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살인 저지르고 나서 후회하고 무기력해지는 게 집중에 방해되려나 싶었는데, 그래도 그걸 끝까지 놓지 않고 가면 진정성 있게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며 “항상 진심을 담아내려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절정의 싸이코패스력(!)을 보여준 모태구나 차민호와 비교하면 최태호가 다소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는 평도 있지만 최태준은 자신의 캐릭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 지점에서 최태준의 ‘진심’이 통한 셈이다.

세 악인이 맞붙는다면 어떨까. 최태준은 “‘피고인’과 ‘보이스’를 제대로 다 보진 못했지만 하이라이트 클립 영상을 통해 접했다. 너무 멋있게 잘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셋이 붙으면, 셋 다 혼자 죽진 않을 것 같다. 누가 마지막에 죽느냐지, 셋 다 집에 못 돌아갈 것 같다”며 웃음을 보였다.

한 번 악역으로 깊이 각인된 만큼 또 다른 작품에서도 악역으로 러브콜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 최태준은 “악역에 부담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지만 모태구, 최태호, 차민호가 다 다르듯 악역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지 않나”며 “물론 상반된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또 다시 악역을 맡게 되더라도 어떤 차이를 보여주면서 연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있어 오히려 악역에 더 욕심이 난다”고 힘 줘 말했다.

“배우들에게 가장 행복한 말은 ‘연기 잘 한다’는 칭찬이잖아요. 그동안 연기적으로 주목 받아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태호를 만나 이렇게 멋진 선배님들과 기사도 같이 나가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듣게 돼 요즘이 제일 행복해요. 앞으로 할 작품에서도 치열하게 열심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