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보석을 찾아. Lost Lake Trail (2)

비는 더욱 세차게 뿌려대고 숲속 주위는 한층 더 어두워집니다. 시작점에 세워둔 곰의 공격을 주의하라는 경고판이 자꾸 뇌리를 스칩니다. 문득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도 듭니다. 출발 전에 확인된 두 대의 차량이 주던 안도감도 무디어 갈 즈음에 흙길을 만납니다. 제법 가파른 길이 진흙길로 되었으니 그만 미끄러져 버립니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손으로 먼저 짚었으니 그저 무릎만 적셨지만 수월한 길이 아닙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이 악천후에 무슨 아집으로 이 길을 끝까지 걷겠다고 나선 것이냐고. 행여 사고라도 난다면 나에게 의지하고 나에게 의뢰한 산 동무들에게 지구의 이방에서 그 아름다운 길들로 데려가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누를 끼치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환경의 광폭함은 조심하면 된다지만 정말 곰의 공격이라도 받게 된다면 더구나 이 지역 곰은 상대적으로 좀 순한 검은 곰 뿐만이 아니라 포악하기로 유명한 불곰도 있다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몸을 되돌려 하산을 하게 됩니다.

거대한 산맥. 수없는 해협으로 이어진 산과 바다의 이음으로 가득 채워진 작고 아름다운 항구 도시 시워드의 포구로 달려갑니다. 지역 정보를 얻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켜고 찾아 갔으나 현충일부터 노동절까지의 여름 시즌만 개장한다고 게시판을 써 붙인 피요르드 국립공원의 방문자 센터 굳게 잠겨있습니다. 어느덧 비는 세우로 변했기에 해안선을 따라 나무로 바닥을 깔아 선착장에도 이르고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도록 길게 이어진 보드 워크를 따라 무심하게 걷습니다. 어부의 우스꽝스런 모습들, 대형 앵커. 돌고래와 인어들. 바다를 상징하는 모든 것들을 조형물로 만들어 장식한 부두의 길이 참으로 정답습니다. 그 길 끝에는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물씬 전해오는 어부의 그랜드 마스터 센터라는 건물이 보입니다. 추위와 비에 흠뻑 젖은 몸을 따스한 물로 씻을 온욕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유료 샤워시설이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그 차디찬 물결을 헤치며 살아가는 어부들이 항구로 돌아와 허기진 배와 갈증을 해소하기 전에 그래도 땀과 소금을 씻어주라는 배려. 덕택에 내가 호사를 누립니다.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밖으로 나오니 옅어진 구름사이로 군데군데 햇살이 비칩니다. 센터의 한쪽 벽면에는 분필로 써서 채워진 대형 낙서판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One thing before you die?”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바라는 것을 적어 놓도록 해두었는데 참 다양합니다만 유독 눈에 띄는 한 줄이 있습니다. 한글입니다. “자식들이 모두 잘되는 것” 북극을 가보고 싶다거나 알래스카에 이주해 살고 싶다거나 하는 조금은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바램인데 반해 우리 한국민들은 자나깨나 자식걱정이 가득하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눈물이 핑 돌며 부모님들의 가없는 사랑과 관심을 가슴 뭉클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게 모든 빛을 주고 온기를 주던 해가 빛을 거두고 사위어가는 저녁. 아름다운 일몰입니다. 검은 구름 가장자리를 붉게 물들이는 황혼빛이 문득 외로움에 젖게해 어부들이 즐겨 찾을 조금은 시끄럽고 비릿한 바다 내음도 나는 후미진 선술집을 찾아 모퉁이 창가 자리에 앉아 한 조끼 맥주에 따뜻한 스프를 시키고 밖을 봅니다. 바다 갈매기가 기륵기륵 소리를 내며 평화롭게 정박한 배위로 날아다닙니다. 새의 존재가 참 부럽습니다. 두발로 서야만 걸을 수 있고 그 발을 헛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존재. 그러나 새들의 여행은 무한하며 활기찹니다. 그래도 새들의 흉내를 조금 내면서 이렇게 낯선 곳에서 홀로 걸으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로 태어나기 위함이고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함이고 다시 농익은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 나이에 들면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날의 삶에 대한 후회로 좀 더 많은 모험과 여행을 해보지 못한 것이라 토로하기도 합니다. 여행이라는 낯선 곳이자 모험의 장에 내 몸을 던져보는 것. 우리로 하여금 온 몸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여행과 모험을 통해서 한걸음 나아가고 한길 더 성장을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더 긴 끈기가 필요하니 그 힘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고 기둥이 되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이 외진 동토의 나라 알래스카 한 변방의 부둣가 카페에 앉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내일의 여정을 꿈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