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아버지와 함께 온 청년은 파리한 모습에 세상 모든 일 다 포기한 사람처럼 말이 없었다. “제 아들이에요. 그런데 우울증이 걸려 말도 없고 하는 것도 없이 온종일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27세의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청년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그러나 청년은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아무리 말을 해도 청년은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을 고쳐 주세요.”라고 하였다.

 

 

나는 청년에게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이 일을 하기 너무 힘 드는구나 나를 좀 도와줄 수 없겠니?”라는 말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로 청년이 사무실에 나올 수 있도록 애원(?)하였다. 그렇게 사정하고 달래고 또 애원하기를 수십 차례, 겨우 청년의 입에서 한마디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네” 그 한마디를 듣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리고 청년을 다음날부터 사무실에 나올 수 있게 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그 청년이 왜 우울증에 빠져있는가에 대해서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청년에게 아는 것도 모르는 듯, 모르는 것은 더 모르는 듯, 청년에게 묻고 또 묻고 시키고 또 시키고,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을 보내며 청년의 입에서 말 한마디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지만, 나는 청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청년에게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하여 그에게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약 몇 달의 시간이 흘렀을 때, 청년은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마디 말을 할 때마다 너무 신기하였고 희망이 보였다. “그래 그렇게 말을 하려무나, 그래야 한다.”라고 속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기쁨은 글로 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형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청년은 말을 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서서히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6~7개월이 되었을 때 청년은 묻지도 않았건만, 나에게 자신이 입을 닫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버지였다. 아버지에 대한 실망으로 그는 입을 닫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희망을 닫았다. 그렇게 약 1년 반을 우리와 함께하면서 청년은 우울증에서 벗어났고 지금은 미국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가끔 “안녕하세요? 건강하세요?”라는 전화를 건네온다.

 

 

어느 어머니가 상담을 요청해 왔다. 즉 이제 겨우 22세 된 딸아이가 우울증이 심해 너무 괴롭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어머니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학에 간 딸이 친구를 사귀는데 어느 가문의 사람인지도 모르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불안하다고 하였다. 너무 예쁜 우리 딸이 그 친구에게 강간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친구 사귀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모두 자제하라는 어머니의 말을 딸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하였고 그 딸을 만났을 때 나에게 한 첫 마디는 “우리 엄마는 내가 인형인 줄 알아요. 저는 엄마의 인형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엄마가 싫어요.”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무슨 일인들 못 할까마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고 숙녀인 딸에게 한 행동은 딸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간섭일 뿐이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많은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며 어머니가 자제해 주어야 할 것을 당부하였다.

 

 

결국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들으니 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딸이 정숙한 사람으로 커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는데 딸이 저렇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라고 하였다.
많은 부모는 “우리 애가 왜 저런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식의 행동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부모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울증은 바로 부모한테서 오는 것이 허다하다. 전에 어떤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왔다. 아들은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도망갈 거예요.”라고 하였다. 어머니의 간섭과 쓸데없는 잔소리가 너무 싫어 어머니를 평생 안 보고 사는 방법은 집을 나가는 것뿐이라고 말하던 아들,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상담한다고 왔지만, 나는 아들이 아닌 어머니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왜 모를까마는 그 사랑이 너무 지나쳐 자식이 부모와 인연까지 끊고 살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들으며 부모가 생각하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식이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이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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