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을 키우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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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속담에 ‘병(病)은 자랑하라.’는 말이 있다. 몸이나 정신이 불편한 것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싶겠지만, 창피한 마음에… 혹은 주변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은 마음에 혼자서만 끙끙 앓다 간단하게 치료가 가능했을 질병을 크게 키워 내원하는 환자들을 보면 이 속담에 담긴 선조의 지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자고로 병이 부끄러워 감추게 되면 고칠 방법을 모르거나 시기를 놓치기가 십상이다. 그러다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못하게 되면 병은 속절없이 깊어진다. 이는 병이란 마치 자라나는 나무와도 같아 설사 겉으로 보이는 증상이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경우라도 그 안으로는 이미 깊이 뿌리가 내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병은 방치되어 있는 동안 그 상태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뿌리를 더 깊이 내리며 된다. “어질병이 지랄병이 된다.”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이렇게 초기에는 작아 보이는 병이 나중에는 큰 병으로 진행하는 경우를 표현하는 또 다른 속담이다.
본인의 경험만을 비춰봐도, 비염이나 생리통 같은 경우는 처음 증상이 시작된 해에 치료를 시작하면 침 몇번으로 완치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최소 수년간은 참고 지내다 더 이상 견딜수가 없게 되어서야 수소문을 통해 내원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침도 맞고, 탕약도 복용하고, 식이요법까지 철저하게 지키면서 치료에 임해도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는 그 시간동안 병 자체도 깊어져 버리지만, 병이 만성화 되어가는 동안 우리 몸은 정상 상태일 때의 기능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질병을 고치는 치료와,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몸의 정상 기능을 다시 복원하는 치료가 같이 들어가야 하니 당연히 치료가 더뎌지고 힘들 수밖에 없다.
일례로 아픈 정도가 비슷한 오십견이라 해도 처음 증상이 발병 후 수개월 내로 내원하면 막힌 기혈만 침 두세번으로 뚫어주면 쉽게 완치가 되지만, 일년 이상 지나도 낫질 않아 그제서야 한의원을 찾게되는 경우는 막힌 기혈을 뚫는 치료와 함께 수년간 제한된 움직임으로 인해 위축된 근육을 살리면서 굳어버린 힘줄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치료가 함께 들어가야만 하니 최소한 십여번 이상의 치료를 받은 후에야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중풍이나 와사풍(구안와사)의 경우도 처음 3개월 안에 치료를 시작한 사람과 1년이상 지나 치료를 시작한 사람의 치료율에는 어마 어마한 차이가 있는데 같은 이유이다.
물론 아무리 이런 얘기를 들어도 병 자체가 자랑스러워 질 리는 없다. 치질같은 질병은 남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 숨기고 싶고, 또 암같은 난치병은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편해 할까바 그들 앞에서 입을 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떤 종류의 질병이라 해도 속으로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는 남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을 기억하자. 치료의 타이밍을 놓지지 않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렇게 ‘병을 자랑하는 습관’은 통해 개개인이 가진 좁은 식견과 지식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치료의 기회를 타인을 통해 얻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을 자랑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외부와 소통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자기가 앓고 있는 병을 자꾸 언급하면서 주변에 고칠 길을 물어보아야 좋은 치료 방법이나 좋은 명의를 소개받는 기회가 오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간단한 병이 커다란 병으로 진행하거나, 다른 합병증을 일으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