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과 노예주인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보니,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세상이 요지경이라는 말처럼, 나름대로 다 다른 색을 띄고 있다.
만나자마자 짜증부터 내고, 불평투성이인 손님들이 있다. 이들은 상담오는데 차가 막혀서 화가 나고, 날씨가 흐려서 짜증이 나고, 프런트의 비서에게 커피를 새로 준비해 달라고 했더니 빨리 만들지 않아서 화를 낸다. 이런 손님을 보면 ‘인생이 그다지 즐겁지 않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가정이 화목하고 마음이 기쁘면, 이런 작은 일들도 그냥 웃으면서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손님들은 자신들의 집 가격보다 더 많은 액수를 인출하려하고, 수입이 모자라서 융자승인이 안 된다고 말하면, 은근한 눈빛으로 방법이 없냐고 물어본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사 시켜보려한다. 이런 손님들은 ‘절박하게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잔 머리의 대가들도 있다. 현재 집에서 돈을 뽑아서, 새로 집을 구입하고, 그 새집에서 돈을 융통해서 사업체에 투입하고, 또 사업체에서 다시 돈을 끌어서 집을 사고. 이런 손님들은 금융파동 전까지는 많았는데, 요즘은 보기가 힘들다. 새로운 융자규정이 이런 손님들의 생존환경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손님들은 벌써 숏세일과 파산신청으로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머리를 썼다. ‘참으로 피곤하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한다. 인생을 즐기기 보다는 경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노예 주인들도 있다. 눈을 깔고 ‘똑바로 하는지 보겠소’라는 손님들이 가끔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손님들이다. 이런 손님들은 아무리 노력해서 일을 성사시켜도, ‘노예의 봉사’이기에 절대 만족 못한다. 그래도 주인으로서 노예를 나무라고 질책해야 하므로, 상처되는 말도 많이 한다. 이런 손님은 나는 정중히 사양한다. ‘손님,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손님께는 만족시켜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보다 유능한 XXX라는 백인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겁니다.’ 라고 사양한다. 이상한 것은 그 노예주인이 백인친구 앞에서는 양처럼 순해진다. 그 손님이 ‘전생에 백인 노예였구나’ 라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 한을 못 풀어서 이렇게 우리를 괘롭히는구나.

 

의심투성이 손님들을 보면, ‘예전에 많이 사기를 당했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더욱 차근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확신을 갖기 전에는 비지니스를 시작하지 않을테니 걱정말라고 말 해준다. 이런 손님은 신뢰가 생기기 전에 일을 시작하면, 모든 고비마다 의심을 받게된다. 같은 팀으로 뛰어도 이기기 힘든 부동산 경쟁에서, 같은 팀원의 신뢰가 없다면 백전백패를 당할 것이다.
과시하는 손님들을 보면, ‘많이 무시 당했거나, 당하고 있구나’라고 조금은 불쌍한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 손님들에게는 말을 경청해주고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인것 같다. 사실 그 손님의 성취에 같이 기뻐한다고 나에게 피해가 되는 것은 없다. 말없이 조용하고 미소짓는 손님은 ‘뭔가 자신감이 있나보다’라고 생각한다. 자신감은 느긋함을 가져오고, 자연스레 모든 일에 관대해진다. 이런 손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소를 전파하는 힘이 있다.

 

조용하고 인상을 찌프린 손님은 ‘뭔가 힘든 일이 많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손님들은 주택융자외에도 힘든 일들이 많아서 미소를 지을수가 없다. 찌푸린 인상도 전파성을 갖고 있다. 괜히 나도 하루가 우울해질 때도 있다. 참고로, 그래서 나는 소리지르고 싸우는 막장 드라마는 안 본다. 보고나면 나도 모르게 괜히 울화가 치밀기 때문이다.
이 칼럼을 쓰는 아침 7시에 전화를 거는 모르는 번호가 있다. 물론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 전화하는 손님은 노예주인님 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