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강정, 트럼프 세금정책

몇 년 전 결혼 십주년 기념일날 남편과 외식을 하러 나갔던 때가 기억난다. 남편도 직장일로 바쁘고 본인도 로스쿨 막바지일 때라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둘만의 시간을 낸다는 자체가 사치였던 때였다. 게다가 특별한 날을 챙기는 데는 젬병인 나는, 소박한 선물과 손편지를 준비한 남편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려 혼이 났었다. 밥을 먹다가 그가 잠시 화장실 간 사이 나는 두고두고 후회할 서툰짓을 하고 말았다. 얼른 가방에서 메모지 한 장을 북 찢어서 빠르게 대충 편지를 쓴 다음 하트모양까지 그려넣고는 마치 미리 준비해온 것인양 테이블로 돌아온 남편에게 불쑥 내밀었던 것이다. 그 불편함과 어색함이란.

지난 주 트럼프 대통령이 떠들석하게 발표한 세제 개혁안을 읽으면서 그간 잊고 살던 그 때의 불편함과 화끈거림이 다시 되살아났다. 취임 100일을 앞두고 구체적인 법안이나 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하던 트럼프는 4월 26일 수요일에 대대적인 세제개혁과 세금인하에 관한 백악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기대를 모았었다. 그러나 정작 백악관 브리핑과 함께 발표된 세제개혁안은 수준 미달의 속 빈 강정이었다.
A4 용지 한 장에 행간 간격을 넓힌 불릿포인트(bullet points)로 개요(outline)만 나열해 놓은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개혁안. 그가 공언했던 세금 인하와 개혁안의 초안은 커녕, 실행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만 확대되는 한 장짜리 계획서. 단언컨대, 내 무심함을 메꾸려고 급조했던 메모장 편지보다도 더 ‘날치기’ 수준이었다. 트럼프가 직접 틀을 잡았다고 하는 개편의 주요 내용이다.

 

• 소득 과세구간 단순화와 오바마케어의 부분적 폐지

현재 미국은 개인 소득 수준에 따라 10% 부터 39.6% 사이의 세율을 7단계의 과세구간으로 나누어 적용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 과세 구간을 10%, 25%, 35%의 3단계로 단순화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소득이 어느 선에서 다음 세율로 올라가는 지는 아직 계산 중이라고 한다.
미국은 소득이 늘어날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현 개인 최고소득세율은 사실 39.6%보다 높다. 왜냐하면 오바마케어의 일부인 순투자이익 세금이 추가로 3.8% 붙으므로 고소득자들은 세율이 거의 43.4% 정도 된다. 물론 이 어마무시한 세율이 모든 소득 종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배당금이나 양도소득세 등은 낮은 15% – 20% 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오바마케어의 일부분인 3.8%의 순투자이익 세금을 폐지하고 과세구간이 3개로 축소된다면 결과적으로 고소득자의 최고세율이 많이 줄어들어 35%의 일반 소득세와 20%의 양도소득세만 걱정하면 되는 것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세율이 간소할수록 좋다고 하며 중산층에 대규모 세금 삭감을 하겠다고 강조해 왔지만, 민주당은 최대수혜자들은 부자들이며 이들을 위한 ‘조세 구멍’만 더 커질 것이라고 반발한다.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대통령부터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전망이어서 ‘셀프감세’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으나 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은 일단 접어두자. 법인세 35%를 15%로 인하, 상속세 폐지, 고소득자에 대한 대체최소세금 (Alternative Minimum Tax) 폐지, 표준공제 상향조정, 자녀 탁아비용 공제 확충 등도 개요에 나와있다. 문제는, 구체적인 세부규정 및 세금감면에 따른 재원조달에 대한 고민과 흔적을 담은 초안조차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법인세 15%로 대폭 인하시 생길 재정적자의 우려에 대해, 원래는 수입품은 과세하고 수출품은 면세하는 내용의 “국경세” 신설안으로 세수 결손분을 메울 방침이었지만 기업들의 반발 등 논란 끝에 막판 개편안에서 도입이 좌절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브리핑을 담당했던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의 기자 질의응답도 실망스럽다.

• 이 개혁안으로 인한 전체 감세액의 예상 규모는? 디테일한 부분은 아직 모른다.
• 6만불 소득의 4인 중산층 가족에게 가져올 효과는? 자세한 부분은 나중에 알려주겠다.
• 소득 과세구간이 25%에서 35%로 올라가는 소득 지점은? 너무 세부적인 질문이다. 아직 여러가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 중이다. 나중에 구체적인 부분을 발표하겠다.
• 세제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수혜를 입게 되나? 대통령의 개인세금보고에 대한 정보가 없다.
정말 그게 다였다. 거창한 세제개혁 공약 후 발표한 개편안이 이것 뿐이라니. 속이 좁은 나는 몇 년 전 남편처럼 급조한 편지인 줄 알고도 넉넉하게 웃으며 받아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야당 반대와 입법 과정에서 일어날 격론을 생각하면 한동안 실질적인 세금감면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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