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생과 양생 I :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치료하고 관리하는 방법

몸과 마음의 건강은 따로 가지 않는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 머무르며, 건강한 몸은 건강한 정신으로만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의 정신상태가 현재 건강하지 않다면 그의 몸은 머지않아 반드시 허약해지고, 그의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반드시 그 안에 담겨 있는 마음도 곧 병이 들어 버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이 둘 사이의 인과 관계를 세밀히 관찰하여 이 둘을 동시에 치료하거나,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이상적인 상태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이를 ‘섭생’과 ‘양생’이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들은 한의학의 가장 오래된 경전 중의 하나인 ‘황제내경’이라는 의서 안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한의학에서는 건강한 정신과 자아를 만들기 위해 몸을 관리하라 한다
약 2500년전 경에 쓰여진 황제내경은 크게 ‘소문경’과 ‘영추경’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영추경’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침을 놓는 방법을 임상과 이론으로 서술한 한의사를 위한 한의학 서적이고, ‘소문경’은 전반적인 한의학 이론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이론을 실생활에 적응해서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건강법’을 기술한 일반인을 위한 일종의 건강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문경에 소개된 ‘건강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병에 잘 걸리지 않는 몸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법’ 에서 더 나아가, 건강한 정신과 자아를 육체의 관리를 통해서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수련법인 것을 알 수 있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맛’이 있다
일례로 황제내경에서는 간/담이 나쁘면 한숨을 잘쉬고, 소리를 잘 지르고 화를 잘내고 남의 속을 아프게 하는 증상이 나오므로, 이때는 신맛이 나는 음식을 먹으라고 한다. 또 심/소장이 나쁘면 잘 웃고, 잘 열받고, 옷을 잘 벗고 잘 흥분하니 이때는 쓴맛의 음식을 먹으라 한다. 비장/위장이 나쁘면 의심을 잘하고, 말을 잘 안하고, 고민을 잘하고 질투를 잘하는데 이때 단맛의 음식을 먹으라 하고, 폐/대장이 나쁘면 우울하고 비관하고 잘 울고 슬퍼하고 동정심이 많고 자살하는데 이때는 매운맛의 음식을 먹으라한다. 신장/방광이 나쁘면 반발하고 잘 대들고 말대꾸잘하고 뒤집어 엎고 사람을 잘 패는데 이때 짠맛의 음식을 먹으면 도움이 되고, 심포/삼초가 나쁘면 이간질하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바닥에 열이 나는데 이때 떫은 음식을 먹으라 한다.

 

마음의 이상은 ‘생각’의 문제보단 ‘건강’의 문제
이처럼 한의학은 여러가지 감정적인 불균형의 원인으로 오장육부의 불균형을 최우선 요소로 지목한다. 이는 우리가 가지는 여러가지 감정(오욕 칠정)이 기본적으로 뇌의 데이터가 아닌 오장육부의 건강상태의 영향을 더 받는다는 뜻이다. 일례로 한의학에서 폐와 대장이 나쁘면 나타난다는 증상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현대의학적인 구분으로 ‘우울증’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한의학에서는 우울증을 정신적인 충격으로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라기 보다, 이미 폐와 대장이 약해지며 생긴 불균형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추수리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 것이다. 쉽게 말해 슬퍼서 우울증이 생긴 것이 아니라, 슬픔을 처리해야 할 폐/대장 기능에 이미 이상이 생겨 작은 일에도 크게 슬퍼하는 상태를 우울증이라 본 것이다.

 

마음의 문제는 몸을 관리하면서 다스릴 수 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그를 슬프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하기 보다는, 폐/대장을 기능을 회복시켜 스스로 슬픔을 추스릴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을 치료의 목표로 삼는다. 폐와 대장의 기운을 복돋아 주는 매운맛이 나는 음식을 먹고, 폐/대장의 기운을 누르는 쓰고 떫은 음식은 피하는 섭생법과 햇빛 아래서 숨이 찰 때까지 매일 달리면서 폐기능을 강화시키는 양생법은 우울증 환자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치료하는 한의학만의 독특한 건강법이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로 충분치 않을 만큼 증상이 심각할 경우에는 침이나 한약같이 더욱 강력한 치료법들이 추가되기도 한다.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리는 한의학의 전통은 현대과학의 최신 트렌드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의학에서는 각종 정신적인 문제의 원인을 신체적인 불균형에서 찾아 심리치료보다는 한약과 음식의 처방을 우선시 하기도 하고, 신체적인 문제에서도 그 원인으로 감정적인 불균형을 지목하여 한약을 처방하기 보다 명상과 호흡법을 처방하기도 하는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섭생과 양생을 통해 병을 치료하려는 한의학만의 접근법은 불과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적 근거가 미흡한 미신, 민간요법 정도로만 치부되기도 했으나 최근의 트랜드를 살펴보면 현대의학에서도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가지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실을 내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니 조상들의 지혜와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