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다 그런 겁니다

아내를 먼저 보낸 그는 이제 은퇴하여 결혼한 아들 집에 살며 손주를 돌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 이제 아버지도 노인 아파트에 가서 사시면 안 될까요?”라고 하였다.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억장이 무너졌다고 하였다. 그는 세상 헛살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내가 저희 때문에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뼈 빠지게 일하면서 공부시키고 장가까지 보냈는데 이젠 나보고 나가라고 하니 어쩌면 좋겠습니까?”라며 한참 동안 신세 한탄을 하는 그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고 손은 뭉그러질 대로 험악해 보였다. “그렇다고 이제 막 결혼해 신혼살림 차린 작은 아들 집에 가서 산다는 것도 그렇고 자식들 키워 봐야 다 별 볼 일 없어요.”라며 천장을 쳐다보았다. “아들을 원망하지 마세요. 우리도 그렇게 부모님 보살피며 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그래도 부모한테 나가라고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하더니 “하긴 그 말씀도 맞기는 하네요. 저도 결혼해서 부모님 한 번 제대로 모시고 산 적이 없으니까요.”라고 하였다.

 

 

그는 아들이 한 그 말 한마디에 배신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있으니까 아내나 아이들이 불편하다고 한다네요.”라고 했지만, 아들의 그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된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아들이 이 아비한테 그런 말을 할 줄 정말 몰랐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바로 무슨 말인가 했더니 바로 이게 그런 말인 것 같습니다.”라는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며느리가 시킨 것 같아요. 우리 아들은 너무 착하고 좋은 아이인데 이건 분명 며느리가 한 말이에요.”라며 억울하다고 하였다. 시아버지가 계시니 행동도 조심스럽고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을 수 있다. “저도 시 부모와 함께 산다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닐 겁니다. 그러니까 며느리나 아들에게 섭섭한 마음 갖지 마시고 노인 아파트 나오면 혼자 사세요.”라고 하자 “저도 며느리하고 있으니까 조심스러운 것이 많아요. 그래서 이참에 노인 아파트 얻어 나가려고 왔습니다.”라는 그는 그래도 아들의 그 말 한마디에 배신감을 느낀 것 같았다.

 

 

지금 노인아파트를 신청하여도 당장 입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노인 아파트를 신청해도 약 2년 정도 기다려야 할 겁니다.”라고 하자 “그렇다고 아들이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기다려야지요.”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노인 아파트가 나올 때까지 편한 세월이 아닐 것 같다. 딸과 함께 생활하던 어느 노인은 “사위도 불편할 것 같고 저도 같이 사는 게 불편해서 따로 나와서 살아요.”라고 하였다. 한여름에 짧은 반 바지 입고 두 다리 뻗고 앉아 있기도 그렇고, 사위도 반바지 입고 싶어도 장모가 있으니 불편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이 노인의 며느리도 아무리 허울 없이 지내는 시아버지지만, 여러 가지 불편한 일이 있을 수 있다. 요즘 결혼한 자식이 부모와 함께 사는 부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성격이 다르고 성향이나 취향이 다른 남남이 함께 모여 서로 이해하고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청각장애, 시각장애, 언어장애로 3년을 살아야 한다던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나 있을 일, 만일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 아마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가만히 보면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크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 세월을 자식이 대신 갚아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식이 성장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가졌을 때는 우리는 그저 멀리서 자식의 행복을 기원해 주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유난히 자식에게 실망한 부모의 말은 ‘내가 저희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억울해한다. 이제 우리의 자식도 내가 살아온 길을 그렇게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식도 자신이 낳은 자식이 성장할 때까지 우리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일하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할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버린 것이 아닌데 그들은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으면 억울하다고 할까, 제 갈 길을 가야 하는 자식이 행복하게 살아만 주어도 우리는 행복해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죽을 때까지 자식이 자신을 보살피고 함께 함께 살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까, 그는 사무실을 나가면서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자식의 마음을 몰랐던 것 같아요. 이제 마음이 좀 개운해졌습니다.”라며 밝은 미소를 띠는 그를 보며 “그래요. 사는 게 다 그런 겁니다.”라고 중얼거리는 나를 본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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