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자랑하라

병은 숨기면 숨길 수록 깊어진다
옛 속담에 ‘병(病)은 자랑하라.’는 말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몸이나 정신에 불편함이 있는 것이 무슨 자랑 거리가 되겠는가 하지만, 창피한 마음에… 혹은 주변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은 마음에 혼자서만 끙끙 앓다가 작은 병을 크게 키워 내원하는 환자들을 보면 이 속담에 담긴 깊은 뜻에 감탄하게 된다. 원래는 간단하게 치료가 가능했을 병을 난치병으로 만들어 내원하는 환자들을 일주일에도 몇 명씩 보기 때문이다.

 

자고로 병을 감추게 되면 치료법에 대한 정보도 얻기 힘들어지고, 치료에 적절한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렇게 적절한 대응을 못하다 보면 병은 속절없이 깊어지는데, 이는 병이란 마치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아서 치료하지 않으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뿌리가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증상은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으로는 이미 병의 뿌리가 아주 깊숙히 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어질병이 지랄병이 된다.” 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이렇게 초기에는 작아 보이던 병이 나중에 큰 병으로 진행하는 경우를 표현하는 또 다른 속담이다.

 

 

침 몇 번으로 나을 수도 있었는데..
본인의 임상 경험에 비춰봐도, 비염이나 생리통 같은 질병은 처음 증상이 시작된 해에 치료를 시작하면 침 몇 번만으로도 완치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대부분 최소 수년간은 참고 지내다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어 내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최선의 치료를 위해 침도 맞고, 탕약도 복용하고, 식이요법까지 철저하게 지키면서 치료에 임해도 최소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는 그 시간동안 병 자체도 깊어져 버리지만, 병이 만성화 되어가는 동안 우리 몸은 병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다른 기능들 까지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질병을 고치는 치료와,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몸의 정상 기능을 다시 복원하는 치료가 같이 들어가야 하니 당연히 치료가 더뎌지고 힘들 수밖에 없다.

 

일례로 비슷한 정도의 통증으로 내원한 오십견 환자사이에도, 처음 발병 후 수개월 내로 내원한 이는 막힌 기혈만 침 두세번으로 뚫어주면 쉽게 완치가 되는 반면에, 발병 후 수년이 지나도 낫질 않아 그제서야 한의원을 찾게 되는 경우는 최소한 십여번 이상의 치료를 받은 후에야 겨우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오십견의 원인이 되는 막힌 기혈을 뚫는 치료뿐 아니라 수년간 제한되었던 움직임으로 인해 위축된 근육을 살리면서 굳어버린 힘줄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치료까지 함께 들어가야만 하니 치료가 쉬울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중풍이나 와사풍(구안와사)의 경우도 처음 3개월 안에 치료를 시작한 사람과 1년이상 지나 치료를 시작한 사람의 치료율에는 어마 어마한 차이가 있는데 모두 같은 이유이다.

 

 

병을 자랑할수록 완치의 기회는 늘어난다.
물론 아무리 이런 얘기를 들어도 병 자체가 자랑스러워질 리는 없다. 치질같은 질병은 남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 숨기고 싶고, 또 암같은 난치병은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편해 할까바 그들 앞에서 입을 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떤 종류의 질병이라 해도 속으로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는 남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을 기억하자.

 

치료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렇게 ‘병을 자랑하는 습관’은 통해 개개인이 가진 좁은 식견과 지식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치료의 기회를 타인을 통해 얻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을 자랑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외부와 소통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자기가 앓고 있는 병을 자꾸 언급하면서 주변에 고칠 길을 물어보아야 좋은 치료 방법이나 좋은 명의를 소개받는 기회가 오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간단한 병이 커다란 병으로 진행하거나, 다른 합병증을 일으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