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2) – 한의학의 폐와 현대의학의 폐는 서로 다르다

현대의학은 인체를 나누면서 분석하고 한의학은 인체를 엮어가며 파악한다
한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우리 몸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그 사이사이의 연관성을 한 명의 의사가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접근법을 취하는 반면, 현대 의학에서는 우리 몸을 작은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각 분야에 대한 전문의가 자세히 분석한다. 동일하게 ‘인체’라는 대상을 연구하면서도 전혀 다른 접근법을 통해 대상을 분석하는 이 두 학문 사이의 이러한 관점적 차이는 임상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해 병원을 찾았더니 병원에서는 간에 아무 이상이 없다 했는데 한의원에서는 간이 좋지 않다고 한다거나, 병원에서는 분명 혈관이 문제라 했는데 한의원에서는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도 한다. 이렇게 한의원과 병원에서 동일한 병증에 대해 서로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면 환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혼란스럽고 난처해지는 것이다.

 

 

 

장부론은 구조보다 기능을 중시한 해부학 이론이다
이렇게 현대의학과 구분되는 한의학만의 진단이 가능하게 하는 ‘엮어가는 사고’는 현대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한의학의 독특한 해부학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를 ‘장부론’이라고 한다. 한의사는 기본적으로 구조가 아닌 기능을 중심으로 인체를 분류하는 해부학인 이 장부론에 근거해 진단과 치료를 행한다.
일단, 우리들이 상식처럼 알고 있는 ‘폐장’, ‘비장,’ ‘간장’, ‘심장’, ‘신장’ 과 같은 장기의 구분은 현대의학적인 분류법을 따르는데 이는 각 장기의 해부학적, 공간적인 위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동일한 공간안에 물리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조직들이 있으면 이를 하나의 장기로 분류, 혹은 연관 장기로 분류하는데, 이는 현대의학의 해부학적 관점이다.
반면에 한의학에서는 해부학적 위치보다는 각 인체의 조직들이 함께 공유하는 생리기능을 중심으로 장기의 구조를 분석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현대의학에서 분류해 놓은 ‘폐’ 이외에도, ‘코’와 ‘피부’, ‘기도’라는 조직들도 다 함께 작용하여야만 한다. 그러므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폐장’이라는 개념에는 해부학적인 ‘폐’, ‘코’, ‘기도’, ‘피부’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피부병이나 비염 같은 병들도 모두 ‘폐병’의 범주에 놓고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의학의 해부학에서는 기능적인 측면보다는 공간적인 위치개념을 더 중시하기에, 코와 폐를 엮기 보다는 귀와 코를 한데 엮어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치료를 행한다.

 

 

 

기능을 중시하는 해부학과 구조를 중시하는 해부학은 서로 다른 진단과 치료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축농증으로 한의원을 찾으면 이는 폐에 생긴 문제가 코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니 먼저 폐를 치료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장기가 상했다는 진단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폐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왜 치료를 하느냐는 핀잔을 듣게 된다. 이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에서 ‘폐’가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러한 사실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매우 혼란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즉 현대의학에서는 횡경막 바로 위쪽에 위치하여 외부의 산소를 흡수처리하는 커다란 두개의 살덩어리를 폐라고 지칭하지만, 한의학에서는 ‘호흡’을 담당하는 모든 조직들은 묶어 하나의 장기로 보면서 폐라는 이름으로 통칭한다. 물론 그 조직들 안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는 대표 부위(장기)에 폐라는 이름을 따로 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장부론에 따르면 인체의 전체호흡의 1퍼센트 정도를 담당하는 피부도 폐가 되고, 호흡이 처음 시작되는 통로가 되는 코도 폐가 된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아토피 같은 피부병이나 비염같은 코병을 치료하기 위해 폐를 우선적으로 살펴본 후에 치료에 들어가는데, 이는 같은 생리기능을 공유하거나 분담하는 조직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두 학문 사이의 이러한 인체에 대한 관점/접근법의 차이가 바로 현대의학과 한의학에서 동일환자의 동일질병을 두고 서로 다른 진단과 치료법을 가지고 접근하는 현상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