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저리게 하는 말초신경병증 – 3편

이전 칼럼에서 말초 신경병증의 하나로써 비타민 B12가 부족해서 생겼던 P씨의 예를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72세의 남성 M씨의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M씨는 원래는 무릎의 관절염으로 필자를 찾았던 환자였다.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본 결과 초기에서 중기에 해당하는 관절염이 진단되었고, 부신피질호르몬이 포함된 주사를 맞음으로써 무릎의 통증이 꽤 많이 좋아져서 잘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환자 말씀이 무릎을 고쳐주었으니 이제는 자기의 오랜 지병인 발바닥이 저린 증상을 좀 고쳐달라고 부탁하셨다.

 

과거 병력을 조사해보니 십여년 전에 당뇨로 진단을 받아서 약을 드시고 있었고, 몇 년 전부터 발바닥과 발가락이 저려서 가정의학과 주치의로 부터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으로 진단받아서 이미 약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진단이 이미 나왔기 때문에 치료만 잘하면 되는데 이 치료가 때로는 쉽지 않다. 무슨 약을 쓰시는지 조사해보니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을 비롯한 거의 모든 말초 신경병증에 약방에 감초처럼 쓰이는 가바펜틴과 릴리카라는 약을 이미 쓰고 있었고 파스형태로 된 리도덤이라는 약도 이미 쓰고 있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가바펜틴이나 릴리카라는 약은 필자도 여러가지 목적으로 아주 흔하게 처방하는 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용도가 신경병성 통증의 치료인데 이런 약을 쓰다보면 간혹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에게서 항의섞인 질문을 받기도 한다. 본인들이 관심이 있어서 이게 무슨 약인지 찾아보니 항간질제, 즉 간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발이 저려서 통증전문의라는 필자를 찾았건만 엉뚱하게도 간질을 치료한다는 약을 처방받았으니 놀라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학에서는 약들이 원래 개발된 의도와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바펜틴이나 릴리카도 역시 간질 치료제로 개발이 되긴 하였으나, 정작 간질 치료제로는 많이 쓰이지 않고 신경병증의 치료에 쓰이는 대표약물이 되었다. 아스피린과 같은 약만 해도 원래는 해열제로 개발되었으나 지금은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을 예방할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만 봐도 원래 개발의도와 다른 목적으로 약이 사용될 수 있음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환자 M씨의 문제는 이미 이 좋은 약을 쓰고 있음에도 효과가 별로 신통치 않다는데 있었다. 여기서 고심끝에 필자가 선택한 약은 때로는 우울증 치료제로도 쓰이는 심발타라는 약이었다. 이 약도 여러가지 다른 목적으로 다른 상황에 쓰일 수도 있지만 말초신경염 치료제로 쓸 수 있다. 이렇게 약을 시작하고 보니 놀랍게도 환자가 2주만에 왔을 때는 발의 증상이 거의 없어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 시간에는 말초신경병증의 진단과 치료를 종합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여기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