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성산 지리 노고단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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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제주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여장을 꾸려 어둠을 헤치며 공항으로 향합니다. 이르게 광주로 날라가 구례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라야 하는 일정이라 일찍 뱅기 예약을 했습니다.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아침을 시키고 나니 문자가 들어옵니다. 2시간 연기. 현지 광주 공항이 짙은 안개로 이착륙이 불가능 하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막연한 기다림. 연기에 또 연기.. 결국은 11시가 넘어서야 제주를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구례에 당도하니 두시가 훨 넘었습니다. 일단은 민생고 해결이 우선. 산채 정식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24가지 나물 반찬에 조기구이와 매생이 국이 한 상 펼쳐집니다. 동동주 한동이도 곁들여서 말입니다. 느긋하게 한잔 걸치고 이 지역 차제조와 다도의 일인자라는 바깥 주인이 만든 차에 도예가인 안주인이 만든 다기에 향을 담아 녹차 한잔 음미합니다. 이어 달여주는 목련차. 자연이 내몸에 스며듭니다.

달콤한 식도락도 잠시. 가이드와 숙의를 합니다.이상태로는 화엄사에서 오르는 것은 무리라 판단하고 성삼재에서 시작하기로 합니다. 이젠 다소 여유로워진 일정. 마트에 들러 2박 3일간의 식량과 먹거리 사냥을 합니다. 옛날 아이스케키도 하나씩 입에 물고 말입니다. 소주 패트병 대병 두어개도 챙기고요. 제과점에서 빵도 사고 푸줏간에서 지리산 흑도야지도 썰어담고.. 배낭이 큰짐으로 하나 가득입니다.

가을이.. 단풍이.. 절정인 지리산입니다. 깊은골로 달리는 단풍은 어느새 산정을 불태워 놓고 저무는 석양은 그 빛갈들을 더욱 붉게 물들여 놓았습니다. 저녁 햇살이 비끼는 사면에는 불이 붙은듯 홍으로 물들어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스산한 성삼재의 하오. 방풍재킷을 입고서 배낭을 맨채 오르는데 몇백미터도 못가 다시 옷을 벗어버립니다. 배낭의 무게가 땀이 비오듯 쏟아지게 해서입니다. 순탄하게 오르는 길이 선택으로 만들어져 있어도 거개가 다 가파른 지름길을 택해 갑니다. 기나긴 여정이면 체력의 안배를 위해 재고도 해보겠지만 짧은 거리이기에 무리를 해 돌계단을 묵직하게 밟으며 땀으로 목욕을 합니다. 어차피 샤워도 할수 없는 노고단 대피소이니까요.

먼저 침대 배정을 받고 노고단으로 올라가 지리의 첫날 Sunset을 감상합니다. 산도 하늘도 모두 붉으니 섬진강 맑은 물도 붉은 색으로 물들어 버렸습니다. 지는 해는 산마루로 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구름산을 넘어가버리더이다. 숙연하기조차 한 지리산의 일몰을 보며 감상에 젖어 있는데 느닷없이 쪽문을 열고 나타난 깡마른 체구의 Lonely Wolf 한 분. 졸다가 연하천에서 길을 잘못들어서 새벽같이 출발해서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하소연같은 넋두리를 하는데 웃을수도 없고 참 난감했습니다. 어쩔거냐고 물었더니 대피소 여유 잠자리가 있으면 하루 자고 다시 세석으로 갈것이고 없으면 그냥 집에 간다고 합니다. Good Luck 을 주문해주고 우리도 하산을 하여 저녁준비에 힘을 모읍니다. 세개의 버너를 피워 지리산 흑돼지 삼겹과 송이 버섯을 구워내고 라면을 끓여 국물을 만들고 햇반으로 시작하는 성찬. 그렇게 지리산 종주 첫날이 마감합니다. 소주 얻으로 온 산동무들과 함께 어우러져 산장지기분이 소등한다고 어름짱 놓을 시각까지 산타령에 흥겹습니다. 어둠은 어둠을 낳으며 노고단의 하루는 깊은 잠으로 빠져들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