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가뭄이 들어 먼지가 날리던 비쩍 마른 땅 위에 흥건하게 빗물에 고인다. “비가 내리니 너무 좋아요.”라고 하자 “이럴 땐 빈대떡에 막걸리가 딱 맞는데”라며 혼잣소리를 내는 분에게 “빈대떡은 좋은데 술은 좀 그런데요.”라고 하자 “그래도 옛날엔 이렇게 비가 내리며 친구와 둘러앉아 그렇게 한 잔씩 했는데”라며 그분은 옛 생각에 잠기고, 나는 빈대떡에 막걸리를 먹은 기억은 없지만, 비가 내리는 날, 마당 가 한쪽에 고인 빗물을 모아 호수를 만들어 낙엽을 띄우고 소꿉장난하던 옛 생각에 잠긴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갔던가, 소꿉놀이하며 나물 바구니 옆에 끼고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건만, 세월은 흘러 이제 얼굴엔 주름이 골을 파고 머리엔 하얀 세 치가 자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이 암이에요.”라고 말하는 여인의 말에 “아! 안타깝네요. 무슨 암이에요?”라고 묻자 “간암인데 희망이 없답니다.”라고 말하는 여인, 남편이 암이라면 병원에 전화해야 하는데 의사도 아닌 나에게 이 여인은 왜 전화를 했을까? 라고 생각하며 “제가 무엇을 도와드려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남편은 아프고, 아이 둘은 공부해야 하고 저 혼자 벌어서 살기가 너무 힘이 드네요. 너무 답답해서 하소연이라도 할까 하여 이렇게 전화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여인에게 내가 해 주어야 할 말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둘이 벌어 살기도 힘든 현실, 그런데 가장이 암에 걸려 누워있으니 아내보다 더 아픈 것은 가족을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일 것이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려야 할까요?”라고 재차 묻는다. “가끔 신문에서 보니까 쌀 같은 것을 주시던데 올해도 그런 행사를 하시나요?”라는 여인에게 “네, 곧 할 겁니다. 보통 토요일에 하는데 전화번호와 성함을 주시면 행사 전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제가 토요일은 못 갑니다. 일해야 하니까요.”라며 말을 주춤거린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주소를 주시면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렇게까지 하시면 저희가 너무 죄송해서요.”라는 여인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주소를 받아적는다. 있는 사람에겐 쌀 한 포도 별거 아니지만, 없는 사람에겐 쌀 한 됫박도 절실한 것이리라, “이렇게 쌀과 라면을 주시면 반년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요.”라고 하시던 어느 분이 생각난다. 정부의 도움을 청하면 된다고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만, 누구나 다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까다로워진 복지국이나 이민국, 이민자들이 살아갈 방법은 어려워도 힘들어도 험한 세상을 그저 그렇게 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혹독한 겨울이 다시 또 찾아온다. 여름엔 자동차의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아 밖을 다닐 수 없고, 비가 오면 차 안의 해동기가 작동되지 않아 밖을 다닐 수 없다는 사람에겐 차를 사 줄 수 없으니 “그럼 차를 사라.”라고 말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먹을 것이라면 주님께서 마련해 주실 것이니 마음 푹 놓고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뱉는다. 그리고 “주님, 쌀 좀 주세요. 그리고 라면도 함께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안 된다면 그건 제가 마련해 보겠습니다.”라며 기도할 뿐이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내리퍼붓는 빗물을 보며 추억에 잠긴다는 것이 사치스럽다. 과거에 무엇을 하였건 어떻게 살았건 그것은 그저 소중하게 그려볼 수 있는 추억일 뿐이다. “시민권을 신청해야 하는 데 너무 부담되네요. 아이가 곧 대학을 졸업하는데 부모가 다 영주권이다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부부에게 “혜택을 볼 수도 있겠지만, 자격이 안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부모가 내쉬는 한숨 소리가 너무 커 사무실 안의 공기마저 탁하게 만든다. “그래도 일단 해 보시지요. 까짓 종이 한 장 써서 보내는데 다행히 되면 기쁨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한번 해 봅시다.”라고 말하자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지 “그럼 좀 도와주세요.”라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웃어야 하는데 웃을 일이 없고 기뻐야 하는데 기쁠 일이 없다. 누구를 탓하리오. 모두가 다 나의 탓이로다. 그들에게 기쁨을 주어야 할 사람이 기쁨을 줄 수 없다는 것도 나의 탓이오.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건넬 희망이 없다는 것도 나의 탓일 것이다.
자식에게 ‘돈이 없어 시민권 신청을 못 한단다.’라고 말하기엔 부모의 무능력이 보이고 그렇다고 돈 생길 때까지 마냥 기다리자니 검은 연기만 가슴에 타오르고 있을 뿐이다. “주님, 어찌하오리까? 저 사람에게 시민권 신청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심이 어떨는지요?”라고 중얼거리는 내 가슴도 검게 그을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