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예

메릴랜드에 사는 그는 버지니아에서 살고 싶지만, 어디 가서 어떻게 노인 아파트를 구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오십시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제가 장애자에다 차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럼 주소를 주십시오. 저희가 모시러 가겠습니다.”라고 하자 “아니, 여기까지 저를 데리러 오시겠다고요? 미안해서 어쩌지요?”라며 안절부절못하였다. “버지니아에 살고 싶다면서요? 그럼 오셔야지 제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그제야 그는 주소를 불러주었다. “아저씨, 그 주소에 가서 그분을 모시고 오세요.”라고 하자 아저씨는 “아니 그 먼 곳까지 가서 데리고 와요? 그럼 또 데려다주어야 하잖아요?”라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장애자라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네요.”라고 했을 때 아저씨는 기꺼이 왕복까지 하며 그분을 데리고 왔다. 그가 “이렇게까지 해 주실 줄 정말 몰랐어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커다란 기쁨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었을 때의 그 기쁨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힘든 삶이 너무 힘들어 숨조차 내쉬지 못하는 노인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을 때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받아서 기쁜 눈물이 아니라 서러워 우는 슬픈 눈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예진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저것을 많이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명예도 더 높아질 것이고 나중에라도 그 이름이 영원히 사람들 마음속에 남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발전? 명예? 그것은 누구를 위해 하는 발전이며 명예일까? 그들은 나를 위한 발전이며 명예라고 말한다.
“저는 저를 찾아오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을 뿐이지 명예를 얻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다.”라고 하자 그가 웃으며 “그래도 이왕 이렇게 시작했으니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한다.
과연 나를 보기 위해 저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들은 모두 어려움을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마음에 희망을 심어주는 그런 일뿐이다. 그래서 세상에 쌓을 명예는 나에게 없다.

 

 

“애써 주신 덕에 아파트가 2년 있으면 나온대요.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 마음에 가득하게 쌓이는 기쁨이 곧 커다란 명예일 뿐이다.
80이 넘은 노인은 세금보고를 하지 않아 시민권이 없으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영어가 짧은 노인이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야단을 쳐 가며 수개월 동안 공부시킨 후, “덕분에 시민권을 받았어요. 처음엔 ‘아니 노인에게 왜 저렇게 야단을 치나?’라는 생각에 화도 났지만, 지금 생각하니 저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노인을 안아주었다. “그래요. 이젠 빨리 메디케이드 신청하세요. 메디케이드를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라고 하자, “너무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노인의 어깨에 힘이 생긴다. 이제 노인은 병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기쁨이었다. 우리는 그런 작은 일에 세상에 대한 어쭙잖은 명예보다 더 귀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기사 보니까 쌀과 라면 주신다고 하는 데, 어려운 이웃 돕기 또 하세요?”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사람 돕는 일에 조금 보태주세요. 쌀 한 포라고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녀는 “제가 조금이라도 해 드렸으면 하는데 이번에 한국에 가서 수술하고 왔어요. 그래서 여유가 없네요.”라고 하였다. “아니? 어디가 아프셨어요? 어디 수술했는데요?”라고 묻자 “다른데 한 게 아니라, 눈이 처져서 쌍꺼풀 하고 주름 제거하는데 돈 많이 썼어요.”라고 한다. ‘아유, 이런 젠장, 고장 나서 수술한 게 아니라 예뻐지려고 돈을 썼구먼,’이라고 중얼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아! 그러셨군요. 어쩐지 예뻐 보인다 했어요.”라고 하자 그녀가 깔깔 웃으며 “그래요? 아직 부기가 덜 빠져서 그렇지만, 부기 빠지면 훨씬 더 나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자신이 예뻐졌다는 그 말이 정말 좋은가 보다.
성형해 본 적 없는 나는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모르겠지만, 성형해서 기쁜 것보다,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더 큰 행복을 느낀다.
돈은 벌지만 넉넉하지 못하니 살기가 어렵고, 자신의 어려움을 알고 도움을 받았을 때 그들은 “그래도 살 만한 세상입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명예보다 더 값진 고귀한 한마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