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기쁨

쌀쌀한 날씨가 살갗을 스친다. 몸을 잔뜩 움츠리고 옷장 속에 넣어두었던 겨울 스웨터를 걸치고 두툼한 겨울 코트를 입는다. 시원한 냉면보다는 뜨끈한 매운탕을 입에 넣으며 속을 데운다.
“이제 완전한 겨울이네요.”라는 말을 들으며 동지섣달 얼음이 가득 든 차가운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게 뭐 그리 맛이 있었을까마는 그래도 한겨울 몸을 부르르 떨어가며 먹던 국숫발, 아마 지금 그걸 먹으라고 하면 먹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추워서가 아니라 먹을 것이 너무 넘쳐나니까. 화롯불 속에서 딱딱 소리를 내며 구워지던 밤 알, 감자를 삶아 김치에 얹어 먹던 어린 시절, 지금은 그 시절이 다 지나가고 먹는 것이 너무 넘치니까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같건만, 그래도 우리 이웃은 한겨울을 나기 위해 애를 쓴다.

 

 

나눔이란 늘 커다란 기쁨을 안겨준다. 넘쳐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행복이었다. 받아서 좋고 주어서 기쁜 나눔, 너와 내가 함께 하면 기쁨은 두 배라고 했다. 주는 것이 너무 작아 손길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그들의 마음이 나의 마음을 따뜻한 부드러움으로 다가온다.
올 수 없는 이를 찾아가는 것도 어찌 보면 귀찮은 일이겠지만,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닌 나누려고 하는 발걸음이기에 그 발걸음도 가볍고 따뜻하다.

 

 

그녀는 피곤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가야 하는 데”라는 말을 들으며 쌀을 옮기고 라면을 옮긴다, “차 한잔하시지요.”라는 그녀에게 “괜찮습니다. 그런데 남편분은 어떠세요?”라고 묻자 “어쩔 수 없지요.”라는 그녀는 남편의 병보다는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추스를 수 없는 피곤함으로 눈이 풀려있었다.
모두 다 한세상 살 다 떠나갈 인생이 아니었든가! 일찍 가나, 늦게 가나 모두 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두고 가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야 어디에 비교하리오, 그러나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 없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운명, 미련이야 없을 수 없겠지만,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지 눈길을 돌린다. “이렇게 가는 저야 괜찮지만, 아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그동안 고생만 시켰는데 이렇게 제가 병을 앓고 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라며 두 손을 만지작거리는 남편, 암 말기라 이젠 누구 말마따나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이렇게 많이 주셔서 한겨울은 족히 나겠네요.”라는 그분의 말에 심장이 떨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만큼 뿐이라면 그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나의 아니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신 주님의 뜻이었기에 나도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죽는다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먼 훗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그 날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런 희망도 없다면 정말 이 세상에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옳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세상에서 죽는 것은 잠시일 뿐, 부활하리라는 희망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저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우리 조상까지야 그렇다지만,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와 항상 마음으로 기다리던 누군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그 희망이 있기에 죽음은 별로 슬픈 것이 아니라 기쁨일 것이다.

 

 

일찍 남편을 잃은 부인이 “그땐 정말 남편 없이 못 살 것 같았어요. 그러나 그래도 이렇게 여기까지 살아왔네요.”라고 말한다. 온 세상이 어두컴컴한 암흑이었고 앞날을 생각하니 절망뿐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높은 언덕도 올라야 하고 내리막길도 가야 한다 생각해 보면 험난한 것이 인생살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잡아주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다 보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행복이 찾아들 것이다. 지금이야 힘들 때지만, 모두 다 그렇게 산 세월이었다. 오직 나에게만 찾아든 어려움이 아닐 것이다.
함께 가는 인생, 너와 나 함께 가는 세상, 그래서 가끔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