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가야 한다

뜨거운 태양이 살갗을 파고든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병원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짓한다. 온종일 그렇게 뜨거운 여름 태양을 맞으며 팔아야 겨우 $100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더워서 그런지 사람도 없어요.”라며 $1짜리 지폐를 주머니에서 꺼낸다. 그리고 한 푼 두 푼 세어 보더니 “$100도 안 되네요.”라며 허허 웃는다. 그는 지금 빨리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당뇨로 눈의 핏줄이 터져 한쪽 눈은 거의 보지 못하고 다른 한쪽 눈이라도 볼 수 있을 때 빨리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일단 여러 가지 검사하는데 드는 돈이 $900이에요. 그리고 난 후 눈에 주사 맞아야 하는데 그게 $1000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아예 아예 병원 가는 걸 포기했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시력이 좋지 못하니 운전하기도 쉽지 않다. 다른 일거리라도 찾아보지만, 볼 수 없는 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정부 보조금 $725를 받아 방세 $500을 내고 남는 돈으로 당뇨약을 비롯하여 약을 사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후드 스탬프를 $130을 주더니 그게 $16달러로 떨어졌어요.”라며 그래도 먹는 것은 어떻게 해결해 보겠는데 한 달을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그냥 콱~하고 가면 그것도 행복할 것 같다.”라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아파도 하소연할 수 있는 가족이 없고 한 푼을 벌기 위해 흥건하게 몸속에 배인 땀을 닦아줄 사람도 뜨거운 햇볕을 가려줄 사람이 없다. “차가 너무 낡아 자꾸 고장 나요. 어떤 때는 이게 사람 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네요.”라며 한숨을 내쉰다. 그나마 낡은 차라도 있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물건을 모으고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토요일엔 어느 빈 공간을 찾아 중고품을 파는데 차까지 고장이라니 나도 모르게 그의 한숨 속에 나의 한숨까지 보태진다.
안경을 쓰고도 볼 수가 없고 돋보기를 쓰고도 보이지 않는 눈을 껌벅이며 무언가를 찾는 그의 모습에서 ‘안타깝다.”라는 말만 자꾸 되뇌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조금만 기다려 봐.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잖아. 무슨 좋은 일이 있겠지”라고 말은 하지만 나에게도 뾰족한 묘안은 없다. 단 몇백 달러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이래저래 $1500을 가져야 하기에 부담이 크다.

 

언제부터 우리는 돈에 매달려 살아왔던가? 돈은 좋은 것이지만 써야 할 곳에 쓸 수 있는 돈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구나 병으로 또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돈이란 놈이 ‘나 여기 있소’라며 툭~하고 떨어져 준다면 그 얼마나 좋으리! 더는 바랄 것이 없다. 그저 지금 어려움 속에 또는 고통 속에 있는 그들의 아픔을 막아 줄 수 있는 돈 한 보따리만 있다면 그래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 아니던가,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다른 장애는 다 행복한 마음으로 이겨나갈 수 있어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산다는 것은 암흑이리라. 반찬 없는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정부 아파트라도 있나 갔다 올게요.”라며 밖으로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월세라도 없으면 그래도 작은 희망 하나 품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나 더 먼 길을 걸어야 끝이 보일까? 얼마나 더 높은 곳을 올라가야 내리막길이 보일까? 흐린 날이 지나면 환한 태양이 뜨건만, 아무리 암흑 같은 밤을 보내도 사람에게 희망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건, 아마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은 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비바람이 불어도 검은 구름이 내 앞을 가려도 우리는 가야 한다. 내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가야 하는 그날까지 그래도 앞을 보아야 갈 수 있을 터인데 그는 지금 자꾸 꺼져가는 시야를 보기 위해 험준한 산을 끊임없이 가고 있다. 그래도 그에게 아직은 희망이라는 것이 가슴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에 꺼져가는 한 줄기 빛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는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조심조심 빛을 찾아가고 있다. 누가 그의 나약한 손을 잡아 위로를 줄 것이며 누가 있어 꺼져가는 그의 빛을 가지 못하게 잡아줄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퉁퉁 부어오른 한쪽 눈을 비비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겨우 하는 말은 “자꾸 만지지 마세요.”라는 그 한마디뿐이다. 고달픔이 없다면 살아가는 재미도 적을 것이다. 근심과 걱정이 없는 세상 역시 허무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볼 수 있는 그 행복만 있다면 우리는 고달픔도 걱정도 그리고 슬픔도 이겨나갈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www.ykcs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