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처럼 가는 사랑

yejin

남편의 신장 결석 때문에 병원을 찾은 우리가 응급실에 앉아 있을 때, 약 176 정도의 키에 거대한 몸매의 노인이 등에 매달린 산소호흡기가 무거운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병원으로 들어서고 노인을 따라 함께 온 부인과 아들 또한 비대한 몸을 기우뚱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한참 후, 남편을 부르는 소리에 우리가 병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 노인의 가족 또한 우리 맞은편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노인은 침대에 누웠고 아내와 아들은 의자에 앉았다. 의사가 다가가 노인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노인은 수십 가지의 약을 먹고 있는 노인은 폐, 신장, 심장, 당뇨 등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는 중환자인 노인은 산소호흡기를 단 몇 분이라도 떼어놓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했다. 노인의 아내는 남편의 병치레에 지쳐버린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고, 아들은 피곤하다는 듯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노인의 나이는 약 70세가 좀 넘었을 것 같은데 아들은 약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늦게 결혼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의사가 물었다.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셨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다음 달이면 60이 됩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 노인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70이 훨씬 넘어 보이는 그가 이제 겨우 60이라니, 많은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도 고통이겠지만, 그런 남편을 간호하며 살아가야 하는 부인의 고통은 더 큰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은편에 누워있는 노인과 그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나는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는 남편의 모습을 안쓰러운 마음에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여인의 모습엔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걱정하는 모습은 없어 보였다. 사랑했던 남편은 많은 병 때문에 숨을 몰아쉬며 침대에 누워있지만, 아내의 얼굴엔 남편의 병시중에 지쳐버린 듯,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람처럼 그냥 그렇게 앉아서 물끄러미 남편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남편이 수술받는 동안 잠깐 집에 왔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노인의 아내는 소파에 누워 긴 잠에 푹 빠져있었다. 병들어 아픈 노인(노인도 아니지만)보다 그 아내가 더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얼마나 지쳤을까? 얼마나 많은 날을 그렇게 잠을 설쳐가며 살았을까? 수십 가지의 약을 챙겨줘야 하고, 고통스럽게 앓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아내는 남편을 의사 손에 맡기고 나서야 그렇게 긴 잠을 잘 수 있었나 보다. 처음으로 남편의 병시중을 들다 보니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약 챙겨줘야 하고, 물 챙겨줘야 하고, 식사 챙겨 줘야 하고, 걸을 때마다 통증 때문에 눈을 찌푸리는 남편 손을 잡아줘야 하는 것들이 귀찮기보단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 그것은 오랜 세월 남편의 병시중으로 지칠 대로 지쳐 버린 그 여인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여인이 “우리 남편 이제 오래 못 살 거야.”라고 말했다. “왜요?”라고 하자 “저렇게 오래 아팠는데 요즘 더 심해”라고 말하는 그 여인의 말속엔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보내야 하는 쓰리고 아픈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 지으며 말하는 그녀도 남편의 병시중에 지쳐버린 것일까? 갈 사람은 가야 한다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함께 했던 긴 세월을 남겨두고 이별을 해야 하는 아쉬움이 너무 아파 나는 울어버릴 것만 같은데, 그들은 아무런 감정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뇌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향하는 나의 발치에 구부리고 통곡하던 남편 모습이 너무 아파 울어버린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오랜 세월 병든 몸으로 살아야 했던 그들보다 그들을 돌본 세월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떠나 보내야 하는 아픔이 가슴속에 더는 머물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여인은 “남편이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렇게 가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라고 했다. 노인의 아내도 아마 남편이 떠나가면 더 편한 세상을 살겠지, 남편이 가고 나면 그 여인도 행복할까? 아, 그래! 그렇구나, 그런 것이었어. 아름답게 찾아왔던 무지갯빛 사랑은 구름이 되어 그렇게 두둥실 떠나가는 것이었구나. 잠깐의 아픔은 기쁜 마음으로 안을 수 있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의 아픔은 잡았던 손을 쉽사리 놓을 힘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