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추석이 다가왔다. 이맘때면 왠지 모르게 고향 생각에 마음이 짠~하게 아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길을 따라 걷던 들길, ‘언제 해바라기 씨를 먹을 수 있을까’라며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젖히고 바라보던 훌쩍 커버린 해바라기, 누렇게 익은 벼 이삭 사이를 뚫고 다니며 메뚜기 잡던 고향 들판.

 

어쩐지 가을이 되면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추석이라고 달려갈 수 있는 고향길은 그다지 쉬운 것이 아닌 것 같다. 더구나 부모님이 안 계신 친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추석이라고 가 봐야 예쁜 송편 빚고 맛있는 음식 만들어 줄 어머니가 없으니 고향은 이제 나에게 있어 무용지물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고향을 가면 활짝 웃으며 반겨 주실 어머니는 없고 차가운 흙무덤에 누워 계시는 부모님께 인사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으니 고향은 어쩐지 마음이 짜~잔하고 그리운 것이 아니라 찡~한 고독감으로 다가온다.

 

“부모님 돌아가신 지 너무 오래되어 별생각은 없지만,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하는 마음이 늘 죄송할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분에게 “그러게요. 그러면서도 늘 부모님 생각하며 사는 게 우리입니다.” 라며 대꾸한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갈 수 있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분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형편이고 나는 갈 수 있어도 가야 할 의미가 없어 가지 않는다.
비록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그래도 우리는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는 고향이 있기에 늘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코스모스를 심어놓았더니 어찌나 잘 번지는지 감당할 수 없어 뽑아 버리고, 노란색 해바라기가 너무 좋아 심어놓았더니 청솔모라는 녀석이 씨앗을 다 파먹어 해바라기 빈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속이 상해 뽑아버렸다. 그래도 아름답게 피어있는 무궁화 나무를 바라보며 나의 조국을 생각하고 텃밭에 심어놓은 호박이며 오이, 고추, 우엉, 더덕을 바라보며 고향을 생각한다. 그렇게 추억으로 그리워할 수 있는 고향이 없었더라면 아마 머나먼 타국에서의 이민 생활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내일이면 더 나아지겠지, 내년이면 훨씬 더 좋아질 거야.’라며 버티어 온 수많은 날. 그러나 더 나아질 것도 없으련만 우리는 그렇게 먼 훗날을 기억하며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그냥저냥 살다가 시간이 되면 떠나버릴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산다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고, 가야할 친정이 있어도 부모님 안 계신 친정 역시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한세상 살다가 부모님처럼 그렇게 세상을 떠나 흙무덤 속에 묻힐 것을, 바둥거리며 살다 지쳐 손 놓고 보니 우리는 이미 늙은 나이가 되었고 이제 떠다니는 구름처럼 흘러 다니다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나갈 것이다. “저에게 소원이 있다면 고향에 한 번 가서 부모님 찾아뵙고 고향 친구들 한 번 보는 것인데 그럴 돈이 없으니 어찌 보면 참 기막힌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저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노인의 눈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슬이 맺힌다. 젊어서야 남부럽지 않게 살았건만, 늙고 보니 자신이 가진 것은 오직 하나 붙어있는 생명줄 뿐이었다.

 

이제 가을이 되고 추석이 되니 추석에 대한 설렘보다는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에 그들의 눈빛은 축 처져있었고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갈 수 있는 곳 고향, 그러나 돈이 없어 갈 수 없는 고향, 14시간이면 그립던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으련만 그 고약한 돈이란 녀석이 없어 가지 못한다. 이제 나이 들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꿈에서도 잊지 못할 고향을 갈 수 없으니 어찌할꼬, “부모님 돌아가시고 산소 한 번 가보지 못했어요. 그게 너무 죄송하고 또 그럴 수 없는 제가 너무 원망스럽습니다.”라며 한숨을 내쉬는 노인에게 꿈이 있다면 고향을 한번 찾아가는 것일 뿐이다. “저는 고향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고향이라고 가 봐야 부모님도 안 계시고, 형제들은 다 저들 살기 바쁘고 그저 올겨울이나 잘 보냈으면 하는 게 제 소원일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분은 이미 고향에 대한 추억거리마저도 다 잊어버린 것 같다. 천하를 다 삼켜버릴 것 같았던 젊은 시절은 다 어디로 가고 힘없고 병든 몸으로 하루살이처럼 오늘을 걱정하고 내일을 걱정하며 사는 사람에게 고향에 대한 추억은 사치일 뿐이라고 한다. 그저 오늘내일 잘 살다 요르단강을 잘 건너갈 그 날만을 기다리며 사는 게 자신이 바라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게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그런 말을 듣다 보니 삶이라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질 뿐이다.

 

추석은 이민자에게 있어 그리움이 아니라 슬프고 어정쩡하게 다가오는 서글픔인가 보다. 그래도 우리는 슬퍼하지 말자. 오늘은 슬픔일지라도 내일이면 기쁨으로 다가오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니 희망을 가슴에 품고 아름다운 코스모스를 바라보고 노란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