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대하는 법 (3) : 지나친 긍정이 오히려 마음의 병을 일으킨다

마음의 병은 부정적인 사람들만 걸리는 것이 아니다
불면증, 다한증, 심장 두근거림 같이 정신적인 요인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질환으로 내원하시는 분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의외로 그분들이 딱히 보통의 이들보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질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객관적인 삶의 지표들을 들여다보면 화병이 없는 사람들과 비교해 오히려 많은 이들이 평균 이상의 부와 더욱 안정적인 다른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마음의 병을 일으키는 주 요인이 꼭 부정적인 생각이나 상황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증상들이 ‘울화병’에 속한다며 그 원인과 병리(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다는…)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 대부분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오히려 반문한다.

 

 

‘저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인데요? 제가 얼마나 신앙이 좋은데요’
‘저는 남을 의심하지 않는 성격이라 별로 스트레스 안 받고 살아요’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딱히 유별나게 힘든 일을 겪고 있지는 않은데요?’
그렇다고 이들이 민감한 속내를 숨기기 위해 의사 앞에서까지 거짓된 삶과 마음을 연기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이렇게 긍정적이고, 신앙심이 깊고, 사람을 잘 믿고, 딱히 불행하지도 않은 조건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울화병에 걸리게 될까?

 

 

지나친 긍정도 마음의 병을 일으킨다
물론 이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한 설명이 있겠지만, 본인이 반복되는 상담을 통해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게 긍정적인 그들의 사고방식이 이 문제점의 근본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자칭 긍정적이며 신앙도 좋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부정적인 감정이나 판단에 대해 뭔가 심할 정도로 근본적인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들은 타인을 늘 신뢰하거나 자신이 현재 처하거나 곧 겪을 미래의 상황에 대해 언제나 낙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치 않았던 상황을 직면해야 하는 경험은 분명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괴로움이 바로 정신적인 충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가졌던 의심이 들어맞을 때보다는 기대가 깨어질 때 늘 더 큰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대가 클수록, 신뢰가 클수록 우리는 더 많이 상처받고 더 많이 충격을 받는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넘어져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미리 인지하였다면 막상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무릎에 난 생채기 만큼만 괴로울 뿐이지만, 넘어질 리가 없다고 굳게 믿었던 이들의 마음에는 생채기가 주는 괴로움과 함께 다시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감정이 함께 스며드는 것 과도 같은 원리다.

 

 

지나친 신뢰로 사람을 대하면 반드시 미래에 상처받는다
사람을 사귈 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미래에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심으로 대했다가 그 관계가 깨어지면, 우리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부모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혼낼 것이라는 상상도 못하던 유년 시절에, 작은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과한 꾸중을 받았던 상처를 평생 지니고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진심으로 신뢰해왔던 자식의 일탈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울분을 지니고 살아가는 부모도 있다. 만약, 이러한 이야기들이 별로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인해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온전히 믿고 확신하던 관계와 일들이 갑작스레 어그러지면서 마음에 남긴 작은 생채기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마음의 병을 얻은 것이다.
사람은 신뢰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야 할 존재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긍정의 에너지’를 포기하지 않고도 이러한 이유로 생기는 마음의 병에 도움이 될 만한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러한 고민을 통해 본인이 나름대로 깨닫고 상담 중에도 자주 사용하는 한가지 방법을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애정을 바탕으로 맺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에게 밥을 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은 그가 신뢰할 만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며, 내가 자식을 안아주고 장난감을 사주는 것은 그가 나중에 내게 똑같이 해주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자. 이것을 늘 명심하고 실천한다면 적어도 신뢰가 깨져서 오는 배신감과 충격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어렵지 않게 예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