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트레킹의 마지막 여정. 그레이 빙하 (2)

한번 씩 몰아치는 강풍에 도래짓 하는 모습이 이 험난한 파타고니아의 자연환경에 아주 익숙한 것 같습니다만 우리 이방인들은 한번씩 소스라치게 놀라며 애써 적응하려 노력합니다. 연평균 기온이 섭씨 9도. 아직까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농작물의 재배가 불가능한데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꽃들은 해거름이 없이 피고 또 핍니다. 또 바람에 대적하다 차마 못 이긴 나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휘어져 있어 묘하고도 낯선 풍경을 선사합니다.

 

 

장대하게 펼쳐진 세계 3대 빙하 중의 하나인 이 파타고니아의 그레이 빙원을 마주하면서 이제 종주를 마감하는 실감이 들면서 잘 해냈다며 신이 주는 포상 같습니다. 바람을 맞으며 오래동안 그 풍경을 감상하며 서로 열심히 사진들을 찍어주고 합니다.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산장으로 돌아오는 길. 발길이 참으로 가볍습니다. 경쾌하기도 하고요. 그리도 그렸던 정인과의 상봉이기에 이 길에 행복과 기쁨이 가득하고 숱하게 갈등했던 지난 모든 것이 이 평화로운 정경 속에 고요히 남으며 또한 삶에 대한 온갖 바람도 미련도 회한도 모두 파이네의 바람으로 흩어집니다. 태평양에서 시작하여 파타고니아 서부를 지나온 냉혹한 바람에게 길을 내놓느라 마음껏 키를 키우지 못한 나지막한 관목들이 떠나는 우리를 애절하게 환송합니다. 자연 속 시간의 숨결이 흐르고 호반 물결의 노래가 온 누리에 퍼지는 파타고니아의 정경. 가슴이 멍해지는 행복한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슴에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이 파타고니아 미지의 나라를 걸으며 그 바람에 실려 날다 보면 세상 근심 모두 잊고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 있겠지하는 정직한 소망을 말입니다.

 

 

저 멀리 아득히 넘고 건너온 걸어서 지나온 길을 내려다 봅니다. 한번씩 살아온 인생길 되돌아 보듯이 힘겹게 올라온 길 되짚어 보며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절망하였던가를 반추해봅니다. 긴긴날 그리도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빙하를 이고 고고하고도 거만스럽게 안데스에 걸쳐 있는 두 직벽의 화강암 피츠로이와 세로 토레를 지척에 두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망설임이 떠나지 않던 나약한 자신을 뛰어넘어 지구의 반을 돌고 계절의 반대편에서 미지의 땅을 밟고 미답의 길을 오른 우리들. 우리는 이 길위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끼고 가슴에 채워 갈수 있을까 또 무엇을 버리고 얻을수 있으며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체념할 수 있을까 끝없이 자신에게 묻고 또 묻습니다. 그 답은 당연 이 길위에 있었습니다. 이 파타고니아의 험한 길을 걸으며 나만의 정답과 나만의 인생 해법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 답도 다양할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소중한 이 하나 뿐인 내 삶을 누구에게서나 존경받아야 할 내 생을 더이상 허접하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자기 성찰같은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의 끝에서 나의 새로운 도전은 또 다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