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lson Mandela 쉬운 일을 쉽게한 위인

얼마전에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탄생기념 100주년에 세계정상들이 모였다. 정치적, 군사적, 이념적 장벽을 넘어서 미국, 서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의 대표단들이 모두 만델라를 기억하기 위해서 한곳에 모인 것이다. 이는 UN총회에서도, 세계경제포름에서도, 올림픽 경기에도 볼수 없는 자발적 모임이었다.

Nelson Mandela는 그런 사람이었다.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미소와 삶을 경축(celebrate)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과연 무엇이 달랐을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첫 흑인 대통령으로 남아공의 정권을 잡았을 때, 드디어 백인들에게 보복이 시작될 줄 알았다. 300년간의 철저한 인종차별 정책과 폭력으로 인해서 백인 스스로도 반드시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포용과 화합을 지향했다. 이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결단이었다. 잘못하면 자신의 지지기반인 흑인유권자들과 자신을 반대했던 백인유권자들을 동시에 잃을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Nelson Mandela의 위대함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확실한 한쪽을 선택하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서 양쪽을 택한 것이다. 이는 오늘 날의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가 자신에게 유리한 어느 한쪽에만 치중하는 정책을 벌이는 것과는 판이한 것이다. 실제적으로 지난주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공약이었던 국경장벽(Border Wall)의 예산확보를 받지 못해서, 연방정부를 셧다운 시켰다. 이는 자신의 지지층 35%를 위한 행동을 강행한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심은 참으로 쉬운 일을 아주 어렵게 만든다. 이성적으로는 ‘돈이 없는 사람이 기부금을 내는 행위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기부금을 내는 것이 쉽다. 권력이 없는 사람이 대중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 대중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이 많이 생기면 돈이 없을때 보다 기부하기 힘들고, 권력을 잡으면 대중을 생각하기 보다는 권력유지에 전력을 다한다.

Nelson Mandela는 쉬운 일을 쉽게 했는데도 세계인들이 존경하는 이유는 세인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돈봉투를 주으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해서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액수가 커질수록 신고율은 낮아지고, 간혹 큰 액수를 신고해서 주인을 찾아주는 행위를 하면, 뉴스 기사거리가 되는 세상이다. 언젠가 청소년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10억원을 줄테니 범법행위를 할수 있겠는가?” 에 아주 높은 수의 학생들이 “네”락 대답했다고 한다. 윤리관이 결국 재물에 밀리는 실태가 안타까운 현실이다.

경제에도 이기고 지는 어려운 해법이 아니라 쉬운 해답이 있다. 워렌버펫의 방식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적대인수를 이용해서 단기간에 돈벌기를 추구하기 보다는 좋은 제품을 사회에 제공해서 영업이익을 통한 돈벌기에 촛점을 맞춘 것이다. 이렇게 쉽지만 올바른 선택은 일반 소시민인 우리에게도 종종 기회가 제공된다. 주식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소문에 구입한 주식보다는, 그 회사의 제품에 매료되어서 그 회사의 미래에 배팅하는 주식구입은 실패할 확률이 아주 적다.

요즘 주식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폭락하고 있다. 지난주는 2008년 금융파동 이후 최악의 한주였다고 한다. 이럴때 일수록, 넬슨 만델라와 같은 소신으로 경영하는 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쉬운 지름길을 찾지않고, 바른 길을 찾는 것만이 투자, 주택구입, 전반적인 삶에 대한 정답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아침이다.